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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4010대 의원 시절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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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4010대 의원 시절 ③

입력
2002.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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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부 질문에서 정부를 비판했다고 '제명' 운운하는 당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박준규(朴浚圭) 당 의장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박 의장은 "당도 살고, 이 의원도 사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니냐"며 "이 의원이 대통령께 사과 편지를 쓰는 게 어떻겠소?"라고 물었다.썩 내키는 제안은 아니었지만 박 의장의 간곡한 부탁이어서 받아 들이기로 했다. "좋소. 편지를 쓰지요. 그렇지만 내게 잘못이 없으니 사과 편지는 못 쓰겠소 . 대신 내 입장을 밝히는 편지를 쓰겠소."

나는 편지에 내 솔직한 심정을 적었다. "제 발언은 진실한 내용입니다. 저는 전부터 여당 국회의원일수록 국민의 편에 서서 바른 소리를 해야만 여당이 국민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국회에서는 여당이 야당에 앞서 바른 말을 함으로써 야당의 대정부 공세를 무디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소신에 의해 발언을 했는데도 각하께서 못마땅하게 생각하신다면 제명을 포함한 어떤 징계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 편지는 박 의장을 통해 바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박 대통령은 편지를 읽은 뒤 화가 풀렸는지 이후 제명 지시는 유야무야됐다. 자세한 사정 얘기는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에게서 들었다.

박 대통령이 김 부장과 김계원(金桂元) 비서실장,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오늘 이만섭 의원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사람 워낙 고집이 세어서…." 내 말이 나오자 김 부장은 "이 의원은 정의감이 강하고 바른 소리를 잘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두둔했고 김계원 실장도 맞장구를 쳤다는 것이다.

사실 내 발언 직후 김재규 부장과 김계원 실장, 유혁인(柳赫仁) 정무수석비서관 등은 대책을 숙의, "큰 문제가 될 게 없으니 공연히 대통령에게 보고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랬던 것을 차지철 실장이 문제를 과장해 보고하는 바람에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5월로 들어 서자 사회는 극도로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5월30일 김영삼(金泳三)씨가 신민당 새 총재에 선출됐다. 김영삼 총재는 취임하자마자 정부 여당에 대한 공격의 톤을 끌어 올렸다. 6월11일 취임 첫 외신기자클럽 연설에서는 김일성(金日成)과 면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정국을 들끓게 만들기도 했다.

8월11일에는 'YH 사건'이 터졌다. 마포 신민당사에서 철야농성을 하던 172명의 여성 근로자들을 경찰이 강제로 해산하는 과정에서 근로자 1명이 숨지고, 신민당 국회의원들이 경찰에 얻어 맞은 사건이다. 신민당은 거듭 대여 강경 투쟁을 다짐했고 정국은 꽁꽁 얼어 붙었다.

김영삼 총재 지도하의 신민당은 대여 투쟁의 와중에서 내부의 적과 부딪쳤다. 8월13일 신민당 원외지구당위원장인 조일환(曺逸煥) 유기준(兪棋濬) 윤완중(尹完重)씨가 '총재단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조씨 등은 김영삼 의원을 총재로 뽑은 전당대회에 대의원 자격이 없는 사람이 25명이나 참여했다면서 총재 당선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9월8일 "총재선출 결의 무효확인 등 본안 소송의 판결 확정 때까지 김영삼씨는 신민당 총재의 직무 집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한 뒤 정운갑(鄭雲甲) 전당대회의장을 신민당 총재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이에 대해 김영삼씨는 "오늘의 불행이 역사적 불행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법원 결정에 불복, 강력한 대 정부 투쟁을 다짐했다. 신민당도 "야당을 말살하려는 정치 조작극에 사법부가 하수인으로 전락해 이 나라 민주주의와 사법부 독립에 조종을 울리고 있다"며 강력한 태도를 보였다.

여야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고 마침내 9월16일 김영삼 총재의 뉴욕타임스 회견으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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