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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만섭/(39)10대 의원시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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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만섭/(39)10대 의원시절②

입력
2002.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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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의장단을 구성한 10대 국회는 1979년 3월24일 첫 번째 대정부 질문을 열었다. 나는 경제와 사회 분야 대정부 질문자로 나섰다."17년 전 외국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자주 의식,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자립 경제, 서민 대중을 위한 정의 구현 등 근본 이념에 공감해 민주공화당에 입당한 이래 오늘에 이르렀지만 과연 공화당이 서민 대중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성하는 바입니다."

의석과 국무위원석이 조용해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최근 부가가치세의 도입과 관련, 남덕우(南悳祐) 전 부총리와 김용환(金龍煥) 전 재무부 장관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의석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야당 쪽에서 '옳소', '잘 한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선거 전 당의 정책위 부의장으로서 부가가치세와 증권거래세의 부당성을 지적했으며 우리나라 실정으로는 시기가 이르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이를 강행했습니다. 정부가 여당은 가만히 있으라는 식으로 밀어 붙이기만 하니 지난 번 선거 결과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난 선거는 분명히 공화당이 1.1% 진 것입니다. 나는 공화당이 선거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왜 그렇게 됐는지 깊이 반성하고, 과거 실책을 고치겠다는 양심을 가져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입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당 간부와 중진급 의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질문을 끝낸 뒤 의원 휴게실로 갔더니 야당 의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이나 유정회 의원들은 누구 하나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도 당시 국회에 파견돼 있던 기관원들의 눈을 의식했을 것이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종찬(李鍾贊) 의원과 주일 대사를 지낸 최경록(崔慶祿) 의원 정도만 격려의 말을 건넸을 뿐이다. 점심 시간이 됐는데도 누구 하나 같이 점심을 먹자고 말을 걸어 오지도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여당의 한 의원은 내가 질문을 하는 동안 본회의장에서 빠져 나가 차지철(車智澈)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국회에 큰 일이 났습니다. 이만섭 의원이 야당의원보다 더 강력하게 정부를 비판해 국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차 실장이 여당에 20명 넘게 자기 사람을 심어 놓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다음날 아침 한 조간신문에는 '옳소 국회에 여 의원의 非옳소 파문'이란 제목으로 나의 질의 모습과 신민당 의원들이 손을 흔들며 격려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함께 실렸다.

내 발언에 대한 권력의 본격적 반응은 이틀 뒤에 나왔다. 차 실장의 과장된 보고를 받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나의 제명을 지시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내가 의사당에 도착하니 박준규(朴浚圭) 당의장이 나를 찾았다. 박 의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의원, 큰일 났습니다. 어제 각하께서 전화를 걸어 이 의원을 제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바른 말을 했다고 쫓아내려 하다니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마침내 공화당을 떠날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오히려 잘됐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박 의장, 걱정말고 나를 제명하시오. 내가 의리상 먼저 공화당을 떠날 수는 없지만 당에서 제명해 준다면 마음이 오히려 편할 것이오. 나도 당을 떠나기를 바라니 어서 제명해 주시오."

박 의장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렇게 되면 이 의원이야 영웅이 되겠지만 공화당은 큰 타격을 입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의원과 당 모두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하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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