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감독 경질설에 이은 항명파동은 한일월드컵 이후 거스 히딩크 '총감독'의 수석코치로 전락한 대표팀 감독의 위상 논란에서 비롯됐다. 박 감독이 히딩크 계승자라는 이유로 사령탑에 발탁된 데다 대한축구협회는 사실상 '국민 영웅' 히딩크를 위해 감독 자리는 비워둔 채 현 코칭스태프를 과도체제로 여기고 있다.축구인들은 10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히딩크의 공헌은 절대적이라면서도 "그를 다시 영입하든지 현 체제에 힘을 실어 주든지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한국축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감독은 따로 있다= 박 감독과 협회의 갈등은 연봉 견해차로 불거졌다. 그러나 돈 문제는 표면적 이유일 뿐 사령탑 본래의 지위를 요구한 박 감독과 임시감독 꼬리표를 달고 싶은 협회의 갈등이 폭발했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한 프로팀 감독은 "만년 수석코치를 맡을 감독이 어딨냐"며 "히딩크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억만금을 줘도 사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감독이 히딩크의 선진축구를 이을 최적임자라고 치켜세웠던 협회는 "감독 경험이 없는 등 검증 받지 않은 인물"이라고 몰아붙이며 새삼 자질문제를 꺼내드는 이중성을 보였다.
■기술고문은 구세주= 축구협회는 6일 히딩크와 기술고문 계약을 하면서 "아인트호벤과의 계약이 끝나는 2004년 7월 우선 감독 협상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남광우 사무총장은 아예 "그도 2년 뒤 한국에 오고 싶다고 밝혔고 협회도 복귀를 원해 걸림돌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2년 뒤 일을 논하기는 너무 이르다"는 히딩크의 말은 차치하고라도 고문 역할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1년에 서너차례 A매치를 관전, 전략·전술 등에 대해 조언한다는 내용은 실효성을 떠나 감독과의 관계설정 등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10만달러 내외인 것으로 알려진 연봉도 상식과 거리가 멀다. 초특급 족집게 과외 대가로 보통 샐러리맨 연봉의 3배 정도를 준다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청소년대표팀 감독 월급이 600만원인 점에 비춰 국내 축구인들의 박탈감도 적지 않고 '히딩크가 만병통치약이냐'는 조소도 나온다.
■협회는 성역= 많은 축구인들은 월드컵 이후 협회와 담을 쌓고 있다. 감독문제의 핵심인 히딩크에 관해 말하는 건 금기처럼 굳어졌고 현안을 지적해도 '4강 신화'는 자신들의 작품이라고 여기는 협회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몽준 회장이 대선출마 준비 등 정치일정에 쫓겨 협회 업무를 등한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한 축구인은 "히딩크 인기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협회의 독선이 계속된다면 축구 열기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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