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둔 여행에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특히 제수와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주부는 더욱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 걱정을 더는 방법이 있다. 여행지의 장터에 들르는 것이다. 시골 인심에도 젖어볼 수 있다. 아울러 큰 비로 피해를 입은 농어민이나 상인을 돕는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북평장(강원 동해시)
강원 동해시는 영동지방의 교통 요지이다. 동해안을 훑는 7번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태백시에서 38번 국도가, 정선에서 42번 국도가 닿는 곳이 북평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큰 장이 섰고 지금도 그 명성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영동 지역을 대표하는 장터다. 끝자리가 3일과 8일인 날에 열린다.
동해에서 영근 온갖 수산물과 백두대간의 골짜기에서 자란 산물이 모인다. 한마디로 산해진미가 모두 그 곳에 있다. 봄이 되면 산나물, 여름이면 오징어를 대표주자로 하는 해산물, 가을이면 각종 과실과 햇곡식이 장터에 가득하다. 정점은 명절을 앞두고 있는 요즘이다.
가장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것은 역시 해산물이다. 제사상에 놓을 것은 물론 평소 먹고 싶었던 모든 것을 구경하고 맛볼 수 있다. 특히 제사상에 놓이는 건조시킨 어물은 북평장의 자랑이다. 장터의 상인들은 모두 생선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 언제나 어물과 친숙하게 지낸 탓이다. 그래서 북평장의 어물은 정갈하고 간이 정확하기로 유명하다. 대구, 명태, 민어, 오징어, 가오리 등이 바로 요리할 수 있는 상태로 장에 나온다.
동해시는 아름다운 명소에 둘러싸인 곳. 북평장 인근에 일출로 유명한 추암해변이 있다. 촛대바위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일출 장면은 애국가 배경화면으로도 유명하다. 산으로는 국민관광지 1호인 무릉계곡이 있다. 명경지수가 흐르는 바위 계곡을 따라 약 2시간 정도의 트레킹이 즐겁다.
■단양장(충북 단양군)
충북 단양은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 남쪽으로는 경북 영주와 이어진다. 그래서 3개 도의 분위기가 한데 어울려 있다. 장터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단양에는 모두 3개의 5일장이 선다. 단양장, 영춘장, 매포장으로 그중 가장 큰 것이 단양읍에 서는 단양장이다. 끝자리 1과 6일인 날에 선다.
단양장은 한때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 특히 남한강에 뗏목이 흘러가던 시절 뗏꾼과 산에서 약초를 캐는 산사람들이 어우러져 제법 시끌벅적했고 객주집에서는 하루 종이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나이가 70이 넘는 어르신 중에는 뗏목을 서울의 마포까지 나르던 뗏꾼이 많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의 규모는 크게 줄었다. 그래서 단양장에서는 세월과 교통수단의 변화에 따라 성쇠하는 장터의 운명을 잘 느낄 수 있다. 단양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상품은 고추, 마늘, 송이 등이다. 특히 소백산 자락에서 채취한 송이는 향기가 깊기로 유명하다.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단양은 충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장. 단양8경 등 관광 명소가 즐비하다. 꼭 들러야 할 곳은 남한강 물 속에 우뚝 솟은 도담삼봉과 동굴들. 온통 석회암으로 둘러싸여 있어 특히 동굴군이 발달되어 있다. 유명한 동굴은 고수동굴과 온달동굴. 거대한 종유석과 석순 등 석회암 동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괴산장(충북 괴산군)
괴산은 고추의 고장으로 불린다. 매운 맛과 단 맛이 함께 어우러진 특유의 맛과 선명한 진홍색이 특징으로 '청결고추'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 중기부터 괴산 제월리에서 재배된 괴산 청결고추는 고추의 원종인 쇠뿔고추를 이용해 우리 입맛에 맞도록 개량된 것. 재배지의 땅이 화강암과 석회암으로 이뤄진데다 해발 250m의 중산간지에 위치해 일교차가 크고 일조시간이 길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고추는 껍질이 두꺼워 고춧가루 양이 많고 씨앗이 적다. 괴산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동부리 일대에서 끝자리가 3, 8일인 날 열리는 괴산 5일장에서는 괴산의 청결고추를 만날 수 있다. 이 곳 농가가 재배하는 청결고추의 약 60%가 이 장에서 거래된다. 장날에는 아예 장바닥에 온통 빨간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괴산의 유명한 여행지는 화양구곡. 맑은 물이 흐르며 기암을 만들어 놓은 천혜의 계곡이다. 단촐한 가족 나들이터로 제격이다. 인근의 월악산도 권할만하다. 산세가 험하다. 가족 나들이라면 산 아래에 조성해 놓은 자연관찰로를 찾으면 좋다. 약 2시간 정도면 편하게 야생꽃과 동물을 구경할 수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정선장(강원 정선군 정선읍)
강원도 첩첩산중 정선 5일장(끝자리수가 2, 7일)은 풋풋한 시골 인심과 산골의 진귀한 산물이 풍성한 곳이다. 종합시장이지만 봄에는 산나물, 가을에는 약초가 유명하다. 읍내에 약초시장이 따로 생긴 이후 가을 약초는 다소 위축된 느낌. 그러나 여전히 도시인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정선장의 주된 품목은 해발 500∼700m의 비탈에서 자라는 고랭지 청정 농산물과 미식가들을 유혹할만한 기호식품. 옥수수, 고추, 마늘, 밤과 더불어 젖은 이끼에 소중하게 싸놓은 윷가락만한 송이버섯, 기생했던 나무의 살이 그대로 붙어있는 영지버섯, 중국산과 뚜렷하게 구분이 가는 '정선산 우엉' 등이 인기상품이다. 이제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짚신은 물론, 검정고무신, 무쇠솥 등도 쉽게 눈에 뜨인다.
정선 장터의 감초는 뭐니뭐니해도 먹거리. 강원도의 음식은 질박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 정선장에서 맛볼 수 있는 강원도 음식들이 그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으뜸 재료는 메밀. 메밀묵을 비롯해 메밀국수, 메밀전병, 메밀부침 등이 도회지 방문객들을 잡는다. 특히 메밀국수는 '콧등치기 국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너무 맛있어 후루룩 끌어당기다 보면 면발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얼음에 채워놓은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면 장터의 표정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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