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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私事化"한 우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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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私事化"한 우리 정치

입력
2002.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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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앞두고 정치판의 열기는 점차 달아오르고 있지만, 막대한 태풍 피해 때문에 국민의 정치 체감온도는 오히려 냉담하기만 하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 아들 병역면제 문제를 둘러싼 이른바 '병풍'정국이나 최근 남북한간에 급속히 진행된 경제협력 및 화해무드, 이른바 '북풍'변수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국민은 미온적일 뿐이다. 이러한 사태를 우리는 정치의 '사사화'(私事化)라는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사사화는 영어 단어 '프라이버타이제이션'(privatization)의 우리말 번역어다. 경제계에서 이 단어는 보통 '민영화' 또는 '사유화'로 번역된다. 자유경제체제하에서 국영기업을 주식의 분산 등을 통해 민간기업화 할 때 또는 구 공산권 국가의 경제가 자유화하면서 종래 국가 또는 공공단체 소유이던 기업을 개인(또는 민간기업)의 소유로 넘길 때 사용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 이른바 '시장원리주의자'들은 민영화와 사유화를 기업의 효율성 향상과 관련하여 바람직한 현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정치영역에서는 '프라이버타이제이션'이 '사사화'로 번역되며, 부정적인 어감을 갖는다. 경제는 시장경제와 자유방임의 원칙에 따라 개인의 이니셔티브와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私)의 원리-효율성, 수익 또는 효용의 극대화 등-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만, 정치는 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公)의 원리-정의, 평등, 선공후사(先公後私) 등-에 따른 운영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모순된 원칙에 따라 경제와 정치가 운영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된 원칙이 병용 또는 혼용되면서 정치에 일어나는 부정적 현상을 우리는 '사사화'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정치의 사사화는, 개념상 구분되나 현상적으로는 상호 연관된 다음 세 가지의 측면, 곧 정치적 무관심과 비참여의 팽배, 정치문제의 사사화, 그리고 사적인 이익추구정신에 의한 정치영역의 잠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보통선거권 및 기타 참정권 보장을 통한 대중의 정치참여의 제도화에도 불구하고, 제도화된, 곧 선거와 관련된 정치참여의 저하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시민이 정치문제나 공적인 사안에 대해 무관심하고 정치적 활동에 등을 돌리며 사적인 영역에 침잠하여 생업과 관련된 경제문제 등 사적인 일에 몰두하는 사사화 현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둘째, 정치문제의 사사화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서 공동체적 차원에서 해결을 요하는 문제들이 개인의 책임과 운명으로 전가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공적 문제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시장에서 고립된 개인들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경제문제 해결을 구하는 것과 평행한 현상으로서 현대정치에서는 자유주의 특유의 개인주의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셋째, 정치의 사사화는 각 개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영역에 참여하되, 이를 수행함에 있어서 공공정신의 발양에 의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던 심성을 그대로 투사하여 공적 영역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현상을 칭한다. 그 결과 공공정책은 공적인 원리가 아니라 상충하는 개인과 집단이 동원한 자원(경제적 부, 권력, 지식, 위세, 정실 등) 및 세력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표적인 자원인 권력과 부의 정경유착 현상, 즉 로비제도 등을 통한 부패 현상은 구조적 필연성을 띠고 나타나게 된다.

목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판에 만연된 두 번째, 세 번째 측면의 사사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함께 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소적 무관심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 같다. 이른바 민주화가 진행된 1987년 이후부터 권력의 게임인 선거가 제도화되면서부터, 정치판에서는 권력에 대한 계산만이 난무할 뿐이며 공동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실종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강정인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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