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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1년] 세계언론 1주년 보도양상/앞다툰 특집… "부시 때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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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1년] 세계언론 1주년 보도양상/앞다툰 특집… "부시 때리기"도

입력
2002.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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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의 직접 관련자를 제외하고 1년 전 그날의 충격과 상처를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미국의 언론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당시 예외 없이 긴급 방송과 1면 머릿기사로 사건을 보도한 미국의 방송·신문들은 테러 1주년을 맞아 경쟁적으로 대대적인 특집 기사를 내보냈거나 준비 중이다. 하지만 미국 주요 언론들은 9·11의 아픔과 교훈을 강조하면서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 테러전의 연장선에서 감행하려는 이라크 공격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지난주(11일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9·11 1년 후'라는 제목으로 거의 전 페이지를 9·11 관련 기사로만 채워 발행했다. '특집호'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한 주제로 지면를 메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뉴스위크도 '9·11 이후'라는 제목으로 같은 주에 특집호를 냈다.

하지만 타임지는 특집 기사에서 부시 대통령과 현 미 정부를 겨냥해 "그는 테러의 최대 수혜자"라며 "국내 문제에서는 그렇지 않으면서 국제 문제에서 지나치게 도덕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고 우려했다. 뉴스위크도 최신호(18일자) 표지 기사로 이라크 공격을 두고 미국과 세계가 대립하고 있다며 9·11 이후 대 테러전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부시의 일방 외교를 비판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신문들도 테러 1주년 특집 기사를 내보내고 있으며 사건 당일에는 특집판을 준비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이미 최신 호에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역사와 사건 현장에 들어설 건축물 모형을 특집으로 보도했다.

방송의 특별 편성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CBS 방송은 부시 대통령과의 특별 회견을 마련했으며 NBC 방송은 워싱턴 문화의 전당인 케네디 센터에서 '미국을 위한 콘서트'를, ABC 방송은 국민과의 9·11 대담을 기획 중이다. CNN 방송도 이번 주부터 9·11 테러 1주년 특집 방송을 시작했으며 디스커버리 채널, 히스토리 채널 등 상당수 다큐멘터리 전문 케이블 방송도 일제히 특집을 내보내고 있다.

미국 외 언론들 역시 9·11 특집 기사에서 부시의 일방 외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세계를 바꾼 날'이란 특집호(2일자)에서 "9·11 이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추진 중인 테러와의 전쟁은 무소불위한 군사 행동 가능성을 과거 어느 때보다 높였다"며 "전통의 동맹관계는 사라지고 추종을 요구하는 제2의 로마 제국을 재현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 역시 9·11 이후 선과 악의 이분법을 강조하는 부시의 정책이 미국의 외교 문제에서 상당한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9·11 테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아랍 국가들에서는 눈에 띄는 관련 기사를 찾기 힘들다. 카타르 위성방송 알 자지라가 테러를 기획한 알 카에다 핵심 요원 2명과 만나 사건 모의 과정을 특종 보도할 예정인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시리즈나 특집 보도를 보기 드물다. 이슬람 국가들은 가해자면서 또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는 데다 아랍국 대부분의 언론 여건이 열악하다는 사정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IHT 보도

9·11 이후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은 아시아 각국에는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국내 반정부세력을 압박하는 데 큰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됐다. 아시아 지역에서 지난 1년 동안 전개된 테러와의 전쟁은 필리핀 남부의 아부 사야프 반군의 세력을 약화하고 싱가포르 등에서 대미 테러 음모를 사전에 적발하는 등 테러와의 전쟁 본래의 목표를 달성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대 테러전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등 아시아 각국 정부들에 의해 국내 반정부 세력을 다루는 빌미로 이용된 측면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8일 보도했다.

우선 말레이시아의 모하마드 마하티르 총리는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 투옥과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정책 수용 거부 등으로 껄끄러웠던 미국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됐다. 말레이시아의 저명한 정치학자 찬드라 무자라프는 "테러와의 전쟁은 역설적으로 눈에 띄지 않던 국내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기여했다"면서 "우리는 알 카에다와 관계없는 국내 테러단체의 이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경우 미군이 남부 지역 반군과의 전투를 위해 필리핀 병사를 훈련시켜주고 위성 정찰자료를 제공함으로써 10년 전 미군 철수 이후 소원했던 두 나라 관계가 많이 회복됐다.

중국은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이는 동안 티베트 등 서쪽 변경지대의 소수민족 분리운동을 탄압했다. 인권 문제로 미국과 껄끄러웠던 인도네시아도 미국으로부터 경찰의 대테러 훈련 자금과 해군분야의 원조를 받았으며, 인도네시아 군부가 미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은 이 지역에서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을 확대할 수 있었다.

이 신문은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으로 아시아의 지역 긴장이 악화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국가에 포함시킴으로써 남북 대화가 정체됐고 미군이 중앙아시아 각국에 주둔함으로써 사방에서 미국에 의해 포위될지 모른다는 중국의 두려움이 커졌다. 중국이 미국의 포위에 맞서 러시아, 중앙아시아 5개국과 함께 구축한 상하이협력기구의 역할도 미군이 중앙아시아에 주둔한 이후 크게 위축됐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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