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 한마디였다. 8일 베니스영화제 폐막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창동(48)의 수상 소감은 그게 전부였다. 기뻐서 펄쩍 뛰지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엷은 미소가 기쁨의 유일한 표현이었다. 그게 불만이어서 대들면 그는 '감사 드린다'의 현실과 그 이유를 아주 처절할 만큼 진지하고 아름답고 정교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실제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 그는 "정직하게 만든 작품을 깊이 있게 받아들인 것에 대한 고마움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때론 숨막혀 하기도 하고, 때론 그 진정성에 마음을 뺏기기도 한다. "천성이냐, 아니면 일부러 그런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천성은 아니라고 했다. 원래 그 역시 아버지의 피를 받아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불 같은 분노가 갖는 폭력성이 끔찍이 싫어 30대 어느날, 그는 자신의 성격을 내던졌다. 그의 표현을 빌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나온 국어 교사였던 그는 이 때부터 격한 싸움꾼이 아니라, 조용한 이야기꾼이 됐다. 1983년 등단후 10여 년 동안 세상과 인간에 대한 그의 느릿느릿하면서도 끈질긴 이야기들은 소설 '소지' '녹천에는 똥이 많다'(1992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로 엮어졌다. 이 이야기꾼에게는 과장이 없다. 환상도 없다. 척박하고 뒤틀린 현실에서 희망을 찾으려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희망은 늘 긴 터널의 출구가 점으로 보이듯 아득해 오히려 가슴 답답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는 1993년 서른 아홉에 소설을 다시 박차고 나와 박광수 감독의 '그섬에 가고 싶다'의 각색과 조감독을 맡아 영화에 뛰어들었다. 변신이 아니라고 했다. "소설을 쓸 때도, 영화를 하는 것도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매체가 달라지고 표현양식이 달라지는 것일 뿐 나는 여전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배우고 현실을 인식한다."
영화로 이야기 터를 옮긴 이유를 그는 '일상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소설은 힘을 잃어버려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일상을 보여주는 데는 영화가 편하다고 했다. 그 일상 속에서 리얼리티나 진실을 드러내는 도전. 이창동은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일상을 통해 아직도 우리의 기억과 역사와 삶 속에 내재한 고통과 편견과 부조리, 사랑과 희망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의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는 개발의 경계선에 있는 신도시라는 공간을 통해, 두번째 작품 '박하사탕'(2000)은 20년이란 시간을 거슬러가면서, 그리고 '오아시스'는 가장 초라한 인간의 만남을 통해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내 이야기의 모든 출발점은 인간이다. 인간을 어떻게 보고,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이며, 얼마만큼 진실하게 다가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주류에서 밀려났거나, 소외된 자들이다. 그는 이를 '못난 사람들, 잘나고 멋지면 내 친구가 아니다"는 말로 표현했다. '초록물고기'의 막둥이(한석규)는 제대하고 할 일이 없어 조폭의 막내가 되고, '박하사탕'의 고문 경찰관 출신 영호(설경구)는 자포자기해 달리는 열차에 뛰어든다. '오아시스'의 종두(설경구)는 머리가 약간 모자라 가족조차 무시하는 사회 부적응자이고, 공주(문소리) 역시 오빠에게까지 이용당하는 뇌성마비환자이다.
영화는 그들의 일상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꿈을 드러낸다. 막둥이는 가난으로 흩어지고 앙앙대는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영호는 20년 전 순임(문소리)과의 순수한 첫 사랑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꿈이다. 종두와 공주도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랑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그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조직에서 인정 받고 빨리 돈을 벌려고 발버둥치던 막둥이는 충성의 대가로 오히려 살해 당하고, 그의 가족은 그가 죽고서야 겨우 식당을 차려 모여 산다. 미친 시대를 살아간 영호는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없었다. 주위의 편견과 오해는 종두와 공주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은 그 속에서 '희망'을이야기하려 한다. 그 희망은 막둥이네 식구의 식당이기도 하고, 순임이 영호에게 주었던 박하사탕으로 상징되기도 하고, 감옥에서 종두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청소를 하는 공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의 절망과 희망을 통해 이창동 감독은 우리의 삶을 왜곡시키고 황폐화하는 개발시대의 새로운 계급의 비애와 행복을, 독재와 폭력의 시대의 상처와 훼손된 순수를, 편견과 소통에 망가지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그의 영화는 언제나 정직하다. 쉽게 그런 희망들이 찾아온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가물가물한 희망을 이야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실의 참담함을 더욱 날카롭게 인식시킨다. 이 때문에 그의 영화는 잔인하리만치 관객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끈질기게 현실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판타지와 거리가 멀다. 이 지독한 리얼리스트는 애초부터 관객이 원하는 달콤한 판타지나 마약 같은 것을 경멸했다. 그에게 영화는 현실을 잊게 해주는 꿈이 아니라, 끝없이 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현실을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이다. 베니스 영화제도 그 아름다움을 봤을 것이다. "영화 한편으로 세상이 바뀌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쯤 생각이라도 하게 해준다면, 내 영화는 의미가 있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 "오아시스" 어떤 영화인가
이창동 감독의 세번째 영화 '오아시스'(사진) 는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이루어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여느 멜로와 다른 점은 그들이 이 사회에서 못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형의 과실치사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갔다온 종두(설경구)와 그 피해자의 딸인 중증 뇌성마비환자 공주(문소리)의 사랑의 에피소드가 징그러울 정도로 사실적인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로 그려진다.
약간 머리가 모자란 사회부적응자와 신체적 장애만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의 감정과 그 표현은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그것을 보는 보통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의 주변인물과 관객은 처음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설정부터 영화가 주는 환상과 감동을 거부한 '오아시스'는 끝없이 무시당하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과의 소통을 요구한다.
영화는 그런 현실을 소리 높여 비판하지도 않는다. 다만 종두의 가족과 공주의 오빠 등을 통해 우리사회에 도사린 편견과 계급의식, 이기주의를 때론 유머스럽게 드러낸다. 그것에 대한 반성이 있을 즈음, 관객은 주인공들과 소통을 하게 된다. 둘의 사랑이 아름다워진다. 이것이 이창동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최면제가 아닌 현실 속에서 얻어낸 '오아시스'(판타지)이다. 7일 열린 베니스영화제 공식시사회서도 "어려운 주제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15일 국내 개봉한 '오아시스'는 8일까지 관객 75만2,800명을 기록하며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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