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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현실읽기](15)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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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현실읽기](15)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입력
2002.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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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느 길거리에서 이광수가 초라한 행색의 망명객 신채호(申采浩·1880-1936·사진)와 마주쳤다. 당시 총독부 기관지에 가명으로 기고하던 이광수로서는 그 만남이 꽤나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다행히 신채호는 그와 관련된 소문을 믿지 않았다. 당신이 그런 글을 썼을 리 없다며 이광수를 위로했다. 이광수는 뒷날, 그 순간 등골에서 땀이 흘렀노라 술회한다.신채호의 강직함은 남달랐다. 서서 세수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총독부를 향해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다소 과장한 것이리라. 훗날 역사가들은 그런 신채호를 민족주의 안에 가둬 두려고 했으나, 그러기에는 그 궤짝이 턱없이 낡고 비좁아 보인다. 신채호가 지닌 삶의 속도가 너무도 빨랐기 때문이다.

1920년대, 어쩌면 그보다 일찍, 신채호는 더이상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한때 성균관 출신의 유학자였던 그가 이번에는 '민중의 직접 혁명'을 외치는 아나키스트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뻘 되는 세대들과 어깨 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민족'이 아니라 '민중'이, '자치'가 아니라 '혁명'이 그의 슬로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자"는 '조선혁명선언'(1923)이다.

시대의 흐름을 쫓아 섬약한 내면 따위나 숭상하며 근대의 아들이 되려는 문학 청년들을, 신채호는 좀처럼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은 노예가 되는 길이었다. '천재' 이광수가 근대의 교양과 지식에 찌들어 어떤 길을 걸었는지,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글깨나 한다하는 조선의 청년들이 너나없이 문학과 예술에 코를 박고 엎어졌을 때, 그럴 바에야 차라리 거꾸로 서서 죽겠다는 것이 신채호의 신념이었다.

삶이 지식을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지식이 삶을 지배할 것인가?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자신의 청년기 저작 '반시대적 고찰'에서 인간은 사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대답한다. 삶은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혹독하게 훈련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이 삶을 외면할 때, 그것은 삶을 억누를 것이라고도 말한다. "오만한 19세기의 유럽인이여, 그대는 미쳤다! 그대의 지식은 자연을 완성시키기는커녕, 그대 자신을 죽였을 뿐이다."

니체는 교양과 상식의 이름으로 청년이 길들여지는 것에 격분했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훈련과 강요의 체계라는 것이다. 점점 비대해지는 과거는 현재의 삶을 짓누르고 젊은 혼을 질식시킬 것이다. 생명이 없는 교훈, 활기를 갉아먹는 지식의 잡동사니가 청년들을 백발의 노인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의 채찍질을 니체는 역사의 과잉이라 불렀다. 그렇게 우리가 삶에서 퇴각할 때, 야릇한 긍지와 함께 내면성에 대한 숭배가 시작된다. 니체가 이른바 시대의 질병이라 불렀던 근대인의 내면.

한때 신채호는 역사에 모든 희망을 걸고 영예로운 과거에 매달렸다. 제국의 폭력과 맞설 영웅들을 낡은 기억 속에서 불러내기 위해 애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신채호는 철저하게 자기를 파괴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축하려는 충동을 숨긴 적이 없다. 왕조의 역사를 '노예의 기억'이라 부정하는 용기를 갖고 있었으며, 시간의 흐름에 굴복하지 않는 강함에 대한 신념도 지니고 있었다. 역사 속의 영웅을 부를 때조차 그는 과거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맹렬한 속도로 현재를 살아냈다. 신채호 자신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를 멈추지 않았다. 니체가 말하는 바, 과거의 짐을 덜어내고 망각하는 법을 신채호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괴물이 되겠다고 했다. 청년들이 혁명의 칼을 던지고 문예의 붓을 잡을 때, 그들이 한없이 좁은 내면의 웅덩이에서 허덕이며 시대의 후예임을 자처할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바로 그것이 노예"라 했다. 그는 시대를 거스르는 투사였다. 협착한 시대의 흐름으로는 좀처럼 측정할 수 없는, 그래서 절대 제로의 강렬함을 유지했던 그의 삶. 그는 진정 강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여기 청년 니체가 있다. 청년 신채호가 있다.

최태원 수유연구실+연구공간'너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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