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알레르기 질환에 딱 들어맞는 속담이다. 어릴 때 알레르기 질환을 앓으면 평생을 알레르기로부터 헤어나기 힘들다. 천식을 앓고 있는 아이는 대부분 알레르기 비염도 함께 앓고 있고, 심한 태열(아토피성 피부염)로 고생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알레르기 질환이 동시 다발적으로 혹은 시간을 두면서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학용어로 '알레르기 행진'이라고 부른다.
▶환경오염·식습관 변화등이 원인
선진국형 질환으로 알려진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천식, 비염 등 각종 알레르기 질환이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센터 이상일 교수는 서울 등 9개 도시 34개 초등학교와 34개 중학교의 4만3,000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알레르기 질환별 유병률 및 위험인자를 조사·분석한 결과, 초·중학생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 비염 등 각종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가장 흔한 알레르기 질환을 살펴보면 초등학생의 경우 천식 8.7%, 비염 10.5%, 피부염 7.3% 순이었고, 중학생의 경우에는 비염 10.0%, 천식 8.2%, 피부염 3.9% 순으로 나타났다.
세브란스병원 알레르기내과 홍천수 교수는 "알레르기 환자가 전 인구의 20∼3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그 숫자는 날로 늘어나는 추세"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홍 교수는 알레르기 환자가 급증하는 이유로는 집먼지 진드기, 바퀴벌레 등 실내 환경오염의 증가와 오존, 미세분진 등에 의한 대기오염의 심화, 식습관의 변화, 그리고 영유아기 시기에 세균감염에 대한 과보호 등을 꼽았다.
▶아기식품 선택 신중해야
알레르기는 몸 속으로 들어온 이물질(異物質)에 대해 우리 몸이 신속하게 이상반응을 나타내는 현상을 말한다. 알레르기 원인물질(알레르겐)은 대부분 단백질로 구성돼 있으며, 신체가 단백질과 접촉하면서 알레르기가 발생하게 된다. 다행히 우리의 몸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피부로 싸여 있어 원인물질, 즉 단백질이 신체 내로 들어 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문제는 우리 몸을 보호하는 피부가 충분히 발달해 있지 않은 신생아와 영유아이다. 기도를 싸고 있는 기관지점막과 위장관을 싸고 있는 위장관 점막이 충분히 발달돼 있지 않아 알레르기 원인물질이 그대로 신체 안으로 들어오면 알레르기에 대항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삼성서울병원 이상일 교수는 "이 때문에 아기에게 주는 식품을 매우 조심스럽게 선택해야 하며 알레르기를 전혀 일으키지 않는 모유로 아기를 키우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체질 개선이니 선식(仙食)이니 하여 권장하고 있는 식품들이 성인에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린이 특히 신생아나 영유아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알레르기 증상을 악화시킨다"고 경고했다.
▶'과잉 육아' 질환 악화시켜
알레르기를 막으려면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주의해야 한다. 임신 중에 알레르기를 잘 일으키는 음식물, 가령 달걀, 우유, 땅콩 등을 먹지 않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천식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훨씬 낮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또 산모의 영양상태가 너무 좋아도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산모의 영양상태가 좋으면 태아의 머리 크기가 증가하는데, 이 때 아기의 머리로 가는 영양분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다른 부분에 공급되는 영양분을 줄이게 돼 면역체계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극성스러운' 육아법들도 알레르기 유발에 일조를 하고 있다. 하정훈소아과 하정훈 원장은 "요즘 모유보다는 곡식가루가 좋다는 '신토불이 육아법'등 각종 특이한 육아법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여도 이렇게 키운 아기는 평생 알레르기로 고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잉 육아'가 오히려 자녀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흔히 생우유와 달걀만 조심하면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 딸기와 토마토, 땅콩 등도 돌 전에는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천식이 있는 아기의 경우에는 돌이 되기 전 새우, 생선, 조개 같은 해산물과 오렌지, 감귤 등도 먹여서는 안 된다. 간혹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는 아이에게 콩분유를 먹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별로 권장할만하지 않다. 안전하다고 알려진 두부나 콩 음식도 돌 전에는 피해야 할 음식들 중 하나다.
최근에는 아기를 '적당히 더럽게' 키우는 것도 알레르기 질환을 예방하는 한 방법이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상일 교수는 "아이가 귀하다고 해서 너무 깨끗하게 키우면 세균과 바이러스 등과 싸우는 기능이 약화되고 항체에 대해 과잉 반응을 하는 알레르기 체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환절기 주의할 알레르기 3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할 바람이 불면서 알레르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특히 알레르기성 결막염, 알레르기성 비염, 알레르기성 기관지 천식 등 '알레르기 3총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센터 이상일 교수는 "봄보다 가을에 알레르기 환자가 더 많다"면서 "일교차가 심해지고, 꽃가루 역시 봄철보다 더 많이 날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알레르기성 결막염
일반적으로 눈이나 눈꺼풀이 가렵고 통증이 있으며 따끔거린다. 결막이 충혈되고 눈꺼풀이 부어 오르고, 투명한 각막의 주변이 우유빛이나 분홍빛으로 변하며, 결막에 젤리 같은 눈곱이 생긴다. 이 때 차가운 물수건으로 눈을 마사지해 주면 좋다. 약물 치료로는 스테로이드제 안약이나 항히스타민제가 사용된다. 한림대 의대 강동성심병원 안과 이하범 과장은 "눈을 비비거나 소금물로 씻으면 증상이 악화하기 때문에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알레르기성 기관지 천식
천식은 간헐적으로 기관지가 좁아져 숨이 차고 쌕쌕거리며, 발작적인 기침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그러나 기침을 자주 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나 목에 가래가 걸려 있는 듯한 증상도 모두 천식에 해당된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이상도 교수는 "요즘같이 일교차가 심할 때에는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을 들이 마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특히 하루 6∼8잔 정도의 물을 마시고 금연하며 기관지 확장제를 사용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알레르기성 비염
여름에 번식한 집먼지 진드기의 죽은 부스러기들과 진드기 배설물이 초가을 건조한 먼지에 섞여 공중에 떠다니면서 인체에 흡수돼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킨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아이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반복적인 재채기, 맑은 콧물, 코막힘이 주요 증상으로 감기로 오인되기 쉽다. 경우에 따라서는 눈 주위가 가렵고 충혈이 되는 알레르기성 결막염을 동반하기도 한다.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실내 환기와 청소를 자주하는 게 좋다. 실내 습도를 40∼50%, 온도를 20도 이하로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또한 소파, 카펫, 커튼 등은 자주 빨고 외출 후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도록 한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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