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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생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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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생리대

입력
2002.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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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개짐의 비유가 몇 군데 나온다. '그토록 죄를 짓던 예루살렘이 끝내 개짐처럼 되고 말았구나'라는 탄식과 '우리는 모두 부정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기껏 잘했다는 것도 개짐처럼 더럽습니다'라는 후회가 그런 것들이다. 개짐은 여자들이 월경을 할 때 샅에 차는 헝겊을 말한다. 즉 생리대다.■ 성경의 예에서 보듯 개짐은 더럽고 불결한 것의 상징이었다. 원효대사는 해골바가지에 든 물을 모르고 마신 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중국유학길에서 돌아섰다. 그런 원효도 시냇가에서 아낙네에게 물을 청했다가 개짐을 빤 물을 주자 팽개쳤다는 설화가 있다. 관음보살의 현신(現身)을 몰라 보았던 것이다. '장석조네 사람들'의 요절작가 김소진은 스스로 작성한 이력서에서 중학교때 장기 하혈을 하던 어머니의 요강에 항상 빠져 있던 개짐을 기억하고 있다. 소년들에게 어머니나 누나가 '피를 쏟는 일'은 더럽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다.

■ 여성들은 그런 시각이 극복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성민우회가 8월 31일에 개최한 제4회 월경페스티벌은 월경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행사였다. 월경은 '월마다 이루어지는 경사스러운 행사'라는 것이다. 여성민우회는 생리대 가격인하 가두캠페인도 벌였다. 생리대는 여성의 필수품이므로 부가세를 면제해 달라는 주장이었다. 이 단체가 700여명을 조사한 결과 60% 이상이 한 달 생리대 구입비로 5,000원 이상을 쓰고 있으며 절대 다수가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 미네소타주, 캐나다의 오타와, 호주는 이미 면세를 해주고 있다.

■ 그러나 당국의 반응은 아직 부정적이다. 드러내 놓고 한 말은 아니지만 "나 참, 살다보니 별 놈의 소릴 다 듣겠네. 그럼 여자들 속옷도 다 면세를 해줘야 되게?"하는 식인 것같다. 그런가 하면 한 인터넷 쇼핑몰회사는 이 달말까지 생리대를 10%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남자들 몰래 열병을 앓는 여성들은 일생 동안 약 500회, 통산 7∼8년 생리대를 사용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모든 물자가 부족한 수해지역 여성들은 지금 달거리의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재경부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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