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은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북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지난 11년간의 북일 수교를 위한 노력과 지난 두 달간의 물밑접촉을 일단 마무리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이 이뤄지면 북일관계의 새 전환점이 마련될 것은 자명하다. 일각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이 북미관계 개선의 전주곡이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다.두 나라의 행보는 1960년대 말 서방 국가들이 중국에 접근한 방법을 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냉전이 종결되고, 테러가 세계 평화의 주적으로 간주되고 있는 오늘날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물론 다르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이 대중(對中)수교 때와 유사한 접근방식을 북한에 적용한 다는 점에서 두 나라의 대북관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조심스럽게 전망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관계 정상화 문제를 제네바에서 몇 차례 논의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후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등으로 대외관계에서 고립주의적인 입장을 표방했지만 소련의 위협이 날로 커지면서 대미, 대일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 역시 소련 포위정책의 일환으로 중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했고, 71년 미국은 비밀리에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담당보좌관을 중국에 파견했다. 그리고 이듬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 땅을 밟았다. 이어 그 해 10월 일본은 중국과 수교함으로써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 모든 일은 '문화혁명'이라는 당시 중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미국은 79년 1월 1일 중국과 정식 수교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시사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중국이 78년 11월 대외적으로 개혁개방을 천명한 직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미국의 접근 전략이다. 미국은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과 개방에 대한 의지를 관계개선의 중요한 잣대로 활용해 왔다.
둘째, 일본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에서 언제나 미국보다 한발 앞서갔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의 수교협상에서도 '전쟁배상금' 등과 같은 과거사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양국은 이 문제를 역사 속에 덮어두었다. 일본은 그 대신 이른바 '경협차관', '경제원조' 등으로 중국을 달랬다. 물론 일본의 대중 원조는 미국과 중국이 관계를 정상화하는 전제가 되었다.
셋째, 일본의 중국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지원은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79년 이후부터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개선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일본의 대중 경제지원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미-일-중 삼각관계는 북한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개선 차원에서든, 아시아 지역에 대한 안보·전략적 차원에서든,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설사 북한과 '전쟁배상금'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고 먼저 수교를 한다고 하더라도 배상금이나 차관 등 일본의 '돈'이 실제로 북한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북미관계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북한의 조심스런 정책 전환으로 북한과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가 급물살을 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과 일본의 대북 지원은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어야 공식적으로 전개될 것이므로 남북경협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또 이들의 수교과정은 항상 외교적·정치적 변수를 안고 진행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비용을 우리나라가 거의 다 부담해야 하는 외교적 미숙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하겠다. 특히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악의 축'과 '특사방문'이라는 두개의 카드를 양손에 들고 있기때문에 언제라도 강경기류가 한반도에 끼어들 여지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주재우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