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를레브 지음·유혜경 옮김 비룡소 발행·8,000원이스라엘 작가 우리 오를레브의 '희망의 섬 78번지'는 2차 대전 당시 폐허가 된 폴란드의 게토 지역에서 홀로 씩씩하게 살아남은 한 유대인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12세 소년 알렉스의 엄마는 행방불명되고 아빠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이웃집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한 알렉스는 폭격을 당해 폐허가 된 버드 거리 78번지 건물의 3층을 은신처로 삼아 아빠를 기다린다.
소년 알렉스는 참혹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빈집을 뒤져 먹을 것을 찾고 3층 은신처를 오르내릴 수 있는 밧줄 사다리도 만든다. 동족을 밀고하는 유대인 이웃의 비정함을 맛보기도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서 먹을 것을 빼앗는 어른의 몰염치에 대항하고 폴란드 소녀와의 짧은 첫사랑도 느낀다.
시간은 흘러 마침내 혹독한 겨울이 찾아온다. 게토 내 빈 집들이 폴란드인들에게 개방되고 폭설로 은신처가 무너지는 위기를 맞은 어느날, 알렉스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빠는 알렉스가 독일군에게 잡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아들의 무덤을 찾는 기분으로 78번지를 찾았던 것. 알렉스는 그동안 겪은 모든 서러움과 두려움을 씻어 내리듯 아빠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린다.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나간 끝에 아빠를 만난 알렉스는 당당히 말한다. "전 그저 혼자 사는 법을 배운 것 뿐이에요. 그것만 빼고 나머지는 다 옛날과 똑 같은걸요." 어느새 어른의 문턱에 한걸음 다가선 알렉스의 모습이다.
1996년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 상을 받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작가 오를레브는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가 죽어간 폴란드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에 수용됐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삶의 고귀함을 이 자전적 소설에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절망적이고 험악한 상황에서도 인간이 고귀함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바로 '희망'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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