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도 이렇게 칠흑같고 암담하지는 않았을거예요…."태풍 '루사'가 전국을 강타한 지 일주일을 넘기고 있으나 6일 주택 등 수해현장에 대한 전기 공급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아 복구작업의 발목을 잡으면서 수재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해당 지자체와 한국전력측은 전신주를 일으켜 세우고 끊어진 전깃줄을 잇는 등 복구에 안간힘을 쓰고는 있지만 가정까지 이어지는 전기선로를 원상복구하기에는일손이 모자라는 등 역부족인 실정이다.
▶밤이면 촛불생활, 옴짝도 못해
7일째 암흑의 밤을 보내고 있는 강원 강릉시 강남동의 김영호(金英浩)씨는 "급한 김에 장판을 먼저 깔고 집으로 들어 갔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생활을 하고 있다"며 "동네 전기공사 업자도 수해를 당해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강릉시 노암동의 변원봉(卞元奉·55)씨도 "천장까지 물이 찼던 방안이 아직 마르지 않아 전기선로 공사는 생각도 못한다"며 "낮에는 집에 와 청소를 하지만 밤엔 꼼짝없이 대피소에서 지내야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강릉시에는 90% 지역에 전기공급이 재개됐지만 이처럼 상당수의 가구에는 감감 무소식이다. 동네 전신주까지는 전기가 오지만 옥내배선이 수리되지 않아 주택까지는 공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시가 급한 수재민과 복구요원들은 한창 복구작업을 벌이다가도 해가 저물면 한숨을 내쉬며 일손을 접고 있는 실정이다.
▶해 저물면 온 동네가 암흑천지
경북 수해지역도 마찬가지. 김천시 지례·부항·증산면 일대는 이틀전 임시도로가 개통되면서 속속 전기시설이 복구되고 있지만, 주민들은 밤이면 촛불로 칠흑을 거둬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증산면 황정리 주민 김모(46)씨는 "증산분교에는 4일부터 전기가 들어왔지만 토사가 가옥을 덮친 이곳은 아직 각 가정의 전기선로를 수리하지 않아 밤만 되면 꼼짝도 못한다"고 말했다.
하천이 범람하면서 온 동네가 만신창이가 된 경북 김천시 양금동의 성달근(成達根·45)씨는 "흙벽이 쩍쩍 갈라지고 물기가 눅눅해 잠도 못잘 형편인데다 감전사고가 우려돼 전깃불을 켤 수도 없다"면서 "밤만 되면 도시속의 암흑지대로 변한다"고 전했다
또 국도 30호선과 지방도 917호선이 복구되지 않은 김천시 대덕면과 울진군 서면 왕피·소광·전곡리 일대 등에는 전신주 등 전기시설 복구가 늦어져 아예 전기와 전화가 모두 불통인 상태다.
▶당국은 '99% 전력복구', 불만 높아
충북 영동지역도 상황은 호전되고 있으나 일부 고립지역과 외딴 곳의 전기대란은 계속되고 있다. 매곡, 상촌, 황간면의 산간지역 일부 가옥은 여전히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전 등은 전기공급 사실상 완전 재개됐다고 밝혀 이재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한전은 이날 태풍 '루사'로 인해 정전사태를 빚었던 125만가구 중 99.4%에 전력이 재공급됐고, 미송전가구는 7,617가구로 줄었다고 밝혔다.
정보통신부도 통신시설이 거의 복구돼 90% 이상 정상기능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 관계자는 "고립된 마을 등에 장비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복구에는 한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영동=한덕동기자 ddhan@hk.co.kr 김천=전준호기자jhjun@k.co.kr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강릉=최기수기자 mount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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