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으면 강릉 시내에서 자동차로 2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강릉시 강동면 임곡리. 태풍이 휩쓸고 간 후 7일째 고립돼 있는 이곳은 사람이 살았던 동네였을까하는 의문이 들만큼 처참했다.시루떡처럼 잘려나간 도로 끝에 차를 세우고 3시간 정도 걸었을까. 집과 축사(畜舍), 전답들이 모두 계곡에서 휩쓸려온 자갈들에 파묻혀 온통 돌밭으로 변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돌밭 사이 사이로 서너채씩 지붕을 내민 집들이 겨우 마을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마을주민 주영기(朱英基·76)씨는 "복구를 마친다 해도 전답들이 망가져 다시 농사를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울먹였다.
끊어진 도로는 사람의 발길만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온정의 손길마저 끊어 놓았다. 큰골마을 주민 최장집(崔長集·44)씨는 "우리가 받은 구호물품이라곤 이틀 전 헬기가 던져주고 간 라면 1박스와 물 1박스가 전부"라며 "그것도 아랫마을에 떨어뜨리고 간 것을 얻어다 먹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임곡리의 밤풍경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전기선이 끊겨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고 산간지방이라 밤중에는 체감기온이 5도 가까이 떨어진다. 주민 김영순(66)씨는 "옷가지며 이불들이 모두 물에 젖어 온가족이 마당에 모닥불 하나 피워놓고 오들오들 떨면서 한데 잠을 자야 했다"면서 "오늘(6일)밤은 비까지 내려 그마저도 힘들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임곡리 마을 초입에는 강릉시의 쓰레기 야적장과 폐탄들이 산을 이루고 있어 작은 비에도 위태로웠고, 뒷산 벌목장에서는 2년 동안 아름드리 나무들이 수백 트럭분도 더 잘려나갔다.
"우리를 이렇게 버려 놓고도 하천 제방공사는 예산만 잡아놓은 채 몇 년씩 미루어 왔고, 재난구호에서까지 이렇게 외면당할지는 몰랐어요." 주민 김모(54)씨는 "날품팔이를 하더라도 이제는 도회지에 나가서 살고 싶다"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강릉=김기철기자 kim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