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월드컵 이후 태극전사들의 유럽진출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가교역을 맡은 에이전트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마케팅 역사가 짧은 현실에서 정통 에이전트가 턱없이 부족, 계약 실패에 따른 선수들의 좌절 등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에이전트의 명과 암을 살펴본다.*국내 에이전트 경험수준 걸음마단계 협상결렬땐 선수·팬에 큰 상처남겨 발빠른 정보력·공인의식등 갖춰야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29)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미 메이저리그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그는 2000년 12월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텍사스로 이적시키면서 무려 2억5,000만달러를 받아냈다. 그는 이 한건의 계약 성사로 2,000만달러를 거머쥐었다.
프로 구단의 운명이 그의 말 한마디에 좌우될 정도로 영향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톰 크루즈 주연 '제리 맥과이어'(1997년)로 친숙한 스포츠에이전트가 젊은이들의 선호직종 1순위로 떠오를 만큼 폭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에이전트는 쉽게 말해 프로선수의 각종 계약을 대행해주는 대가로 일정액의 커미션(수수료)을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중개인이다. 숨은 진주를 캐내기 위해 그라운드에서 살아야하고 좀 더 좋은 계약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구단과 고도의 머리싸움을 벌여야 한다.
국내 에이전트도 월드컵 4강 진출을 계기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경험과 노하우가 달려 스포츠 마케팅의 꽃이라는 찬사와 함께 무책임하다는 비난도 있다. 계약이 깨지면 스타는 물론 팬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기 때문이다.
◆스타의 삶을 바꾼다
국내축구 에이전트 1세대인 최호규(47)씨는 91년 타지키스탄 출신 골키퍼 신의손(샤리체프·안양)을 영입하면서 프로축구계의 거두로 떠올랐다. 이을용(트라브존 스포르)의 터키 진출도 그의 작품이다.
고교 축구선수 출신인 그는 축구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변호사, 선수 스카우트, 선수 일정 관리 매니저를 데리고 있는 그는 "연간 3억∼4억원 가량의 수입은 너끈하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에이전트 몫인 10% 내외의 수수료를 공돈으로 여기는 등 계약문화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최씨는 지금도 각 구단의 마케팅 인식이 기대 이하라고 지적했다.
협상 결렬에 따른 고통도 크다. "97년 최용수의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 진출이 좌절돼 언론의 질타에 시달렸다"는 그는 최근 황선홍의 터키 진출 실패로 또다시 곤경에 처했다. "한 선수의 인생이 달린 만큼 역경과 함께 보람도 크다"는 그는 "에이전트는 정보와 순발력, 진실함과 공인의식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나긴 준비기간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에이전트가 된 변상수(31)씨는 아직 공식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노하우와 인맥이 없어 활동할 기회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변씨는 동기 에이전트 3명과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상하고 선수와 축구인들을 만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기본 무기인 영어실력을 쌓기 위해 CNN을 청취하고 에이전트에 관한 강의로 생계를 꾸린다. 선배 에이전트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변씨는 "태극전사들이 무적선수로 전락하는 건 유럽시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2∼3년은 유럽에서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황선홍등 실패는 에이전트 과욕·무지탓/송종국 가장 성공적 사례
월드컵 이후 유럽진출을 꿈꾼 태극전사의 희비는 에이전트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렸다. "해외진출의 모든 문제를 에이전트에게 맡겼다"는 김남일(25·전남)의 말처럼 운동에 전념해야 할 선수들은 에이전트에게 자신의 미래를 위탁하고 있다.
가장 성공한 선수는 히딩크 사단의 황태자 송종국(23·페예노르트)을 꼽을 수 있다. 역대 최고 이적료(400만달러)로 네덜란드에 진출한 그는 당초 잉글랜드행을 모색했지만 주전 가능성이 높은 합리적인 팀을 선택했다. 그의 대리인인 (주)프라임스포츠인터내셔널 장영철 사장은 박찬호의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의 매니지먼트사에서 축구팀장으로 일했던 경력이 있다.
월드컵 이후 유럽진출 1호인 이을용(27·트라브존 스포르)은 터키라는 미개척 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이적료 160만달러, 연봉 50만달러에 계약한 그는 "터키리그는 빅리그 진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이상적인 곳"이라며 흡족해했다.
차두리(22·빌레펠트)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정통한 아버지 차범근 전 감독의 능력 덕에 유럽에 진출한 케이스다. 레버쿠젠의 칼 문트 구단주와 절친한 차범근 전 감독은 5년간 300만달러의 장기계약을 성사시켜 국내 전문 에이전트들을 무색케 만들었다.
그러나 황선홍(34) 유상철(31) 등 국내 간판스타들의 무적선수 전락은 국내 에이전트의 무능력과 도덕적 해이를 만천하에 드러낸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월드컵 4강 꿈에 젖은 일부 에이전트들이 국내 최정상급 선수를 이용해 한 몫 단단히 챙기려다 화를 자초했다"는 게 축구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유럽시장 정보에 어두운 함량미달 에이전트들의 상도를 벗어난 무분별한 행동이 되풀이 되는 한 한국축구는 더 큰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축구에이전트 되려면-FIFA인증 자격 취득 수년간 노하우 쌓아야
스포츠에이전트는 원칙적으로 종목에 관계없이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축구가 주 대상이다. 프로야구와 프로농구는 선수들의 에이전트 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축구에이전트로 활동하려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증하는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 1년에 두차례(3·9월) 시행되는 대한축구협회 주관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전문직업인 손해배상책임보험(230만원 일시불)에 가입하면 공인 에이전트가 된다. 이달 25일 서울 타워호텔에서 제3회 자격시험이 열린다. 시험 과목은 FIFA의 정관 및 시행세칙, 에이전트와 선수이적 관련규정, 민법 등이다.
현재 국내의 FIFA 에이전트는 16명이지만 무자격 에이전트도 상당수 있다. 자격보다는 축구계의 인맥, 자금력, 어학, 협상력 등이 활동의 성패를 좌우한다. 특히 대부분이 선수 또는 주무 등으로 활약했던 1세대와 달리 FIFA 에이전트는 돈과 명예를 좇아 스포츠 마케팅 세계에 뛰어들었다.
축구협회 신만길 대리는 "지금은 유예기간이라 무자격 에이전트의 활동을 규제하기 어렵다"며 "프로연맹은 물론 각 구단·선수들에게 공식 에이전트와의 계약을 권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격증 취득은 에이전트 활동을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합격 후 집단연수를 통해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는 국가고시와 달리 최소 2∼3년의 개인적인 준비기간을 거쳐야 한다.
지난해 에이전트가 된 유지호(37)씨는 "시장파악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익창출 모델이 적기 때문에 자유롭게 거액을 벌 수 있다는 꿈만으로 일을 시작하면 낭패보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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