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에 '위기설' 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날 300포인트 이상 폭락했던 도쿄 증시가 4일에도 140 포인트 이상 떨어진 9,075.09로 마감, 19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하자 조심스런 회복이 점쳐지던 일본 경제가 또다시 격랑에 휩싸였다.미국·유럽 증시 역시 이날 세계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감으로 일제히 폭락한 뒤여서 일본 경제의 앞날에 대한 비관적 시각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주식평가손실 예상이 폭락 불러
증시 폭락을 부른 직접적인 원인은 이달 말 예정돼 있는 올해 회계연도 상반기 결산에 따른 금융권의 대규모 주식평가손실 우려와 6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저조한 수출 실적 때문이다. 일본 금융권은 제로에 가까운 낮은 금리와 냉각된 투자심리로 인해 떠돌고 있는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에 투자, 유동성을 관리해 왔다.
그러나 이달 30일 상반기 결산에서 금융권의 대규모 주식 평가손이 예상되자 이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증시를 이탈한 게 폭락의 도화선이 됐다. 일부에서는 은행부실에 대한 지나친 우려감이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장 여건을 감안하면 투자자들의 패닉 현상은 당연한 것이라는 시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 경제의 유일한 희망인 수출의 부진과 올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의 예상 밖의 저조한 실적도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지난달 30일 일본 2·4분기 GDP 성장률은 0.5%에 그쳤고 1·4분기 성장률 역시 당초 잠정치 1.4%에서 0%로 수정발표됐다. 분석가들은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일본 경제는 3·4분기를 정점으로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쿄전력의 원자력사고 은폐 등 잇단 기업 스캔들, 이라크로의 확전 및 추가테러 우려 등도 투자심리를 냉각시킨 요인이다.
▶반등 전망도 부정적
일본 증시의 반등 여부에 대한 전망도 현재로선 부정적이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 구조개혁 실패로 장기불황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재정지출이 부실채권 정리보다는 고용유지만을 위한 공공사업에 몰려 유동성 증가효과를 유도해 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패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12일 예정돼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경제정책이 발표될 때까지는 부진한 증시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두 정상이 내놓을 카드가 없다" 는 비관론과 함께 미국 일본 모두 9월은 경제가 전통적으로 약세를 보였던 시기였다는 점 등으로 조기 회복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대세이다.
▶미국 증시의 폭락
미국 증시는 대표적 제조업지수인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지수 부진이 기업실적에 대한 우려를 촉발, 폭락을 불렀다. 3일 발표된 ISM 지수는 경기확정과 수축의 경계선인 50을 넘어서긴 했지만 예상치였던 51.8에 훨씬 못미친 50.5에 그쳐 지난달 30일 발표된 소비자신뢰지수의 하락으로 촉발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지난달 기업감원 역시 6개월 내 최고치를 기록, 자본투자 및 신규고용이 여전히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증시를 '성장침체(Growth Recession)' 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으나 속도가 너무 느리고 실업은 여전히 증가해 경기가 여전히 침체에 빠져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현상은 1991∼92년 침체기에서도 발생했다. 당시 침체가 92년 3월 공식적으로 끝났으나 뉴욕증시는 다음해까지 부진을 면치 못했다.
투자자들이 최근 증시의 불안정성을 악용, 단기투자에 집중하는 패턴을 보여 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성장침체의 한 부정적 측면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경제 회복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단기반등의 여지는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투명하다는 데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내구재를 중심으로 한 소비심리가 여전히 살아있고 개인소득은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더블 딥(이중하강)'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일반적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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