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어떤 결단을 보여줄지 전혀 알 수 없는 가운데 현안에 대한 일본측의 복안은 대략 윤곽을 드러냈다.과거 북일 교섭에서 일본측이 제시했던 원칙과 최근 일본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북한측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과거 청산 문제에 대해 일본측은 구두 사과와 경제협력 방식의 해결을 염두에 두고 있다.
북한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문서화하고 싶어하겠지만 일본측은 지금까지 역대 총리들이 한국에 대해 했던 수준을 넘지 않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구두 사과를 검토 중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10월 방한 때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에 마음으로부터 반성과 사과한다"는 구두 표명을 한 바 있다.
북한의 배상 요구에 대해서도 일본측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의 유·무상 차관 제공 등 경제협력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협력에 식량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을 묶어 '한 세트'로 제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북한이 경제협력 방식을 수용한다면 유상과 무상의 비율, 차관 액수, 차관 공여 기간 등 구체적 내용은 국교정상화 교섭 테이블에서 다루어지겠지만 일본측이 최대한 북한측의 편의를 배려할 것으로 보인다. 50억∼100억 달러 선으로 추정되는 차관 제공은 국교정상화가 완료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이 먼저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북한이 국내적으로 '사죄와 배상의 의미'라는 해석이 가능한 문안이 만들어진다면 경제난 때문에 결국은 경제협력 방식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국내에서 가장 여론의 압력을 받고 있는 납치 의혹에 대해서 일본측은 '인도상의 문제를 포함한 현안의 해결'이라는 표현으로라도 김 국방위원장이 서명하는 공동문서 또는 공동선언 등 합의문에 넣고 싶어한다. 또 납치로 추정하는 11명의 소재확인 등 정보 제공을 바라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해결 의지 표명이나 정보 제공 등 최소한의 진전 움직임이 없으면 국내 여론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문제는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긴장완화를 위해 주변국과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취지를 합의문에 담는 방식으로 북미 대화를 통한 조속한 해결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측은 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이 원칙적이고 선언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거 청산과 납치문제의 두 가지 난제를 계속 다루어 나갈 국교정상화 교섭에 기한을 설정해 구속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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