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만 나오면 한시름 덜 줄 알았는데…." 수중도시를 벗어난지 닷새 만인 4일 수돗물 공급이 재개된 강원 강릉시. 그러나 황토먼지와 쓰레기 더미에 여전히 뒤덮여 있는 강릉 시민들의 고통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먹을 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만 공급되는 수돗물을 마실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전히 물 구경조차 못하는 곳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마실 물 없어 여전히 '타는 목마름'
남대천 옆 저지대로 온 동네가 물에 잠겼던 옛 노암동 식당골목. 주민들은 찔끔찔끔 나오기 시작한 수돗물로 가게안 진흙을 청소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한번 보세요. 건질게 하나라도 있는지." 황재일(黃在日·40)씨는 식당 안을 가리키며 "물이 없어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해 모든 게 쓰레기로 변했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진흙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김홍기(金洪起·37)씨는 "수돗물이 나오고 있지만 마실물이 없어 고통이 더 크다"며 "오늘에서야 생수 2통을 지원받곤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이날 공급이 재개된 수돗물은 정수장이 정상이 아니고 수도관도 오염된 곳이 많아 음용수로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수돗물의 탁도가 높아 아직은 마시기에 부적합하다"며 "정수장과 수도관 등이 언제 정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예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지대, 침수지역은 물구경 못해
수돗물이 나오는 지역은 그나마 다행이다. 교동 등 고지대와 침수피해가 큰 마을은 여전히 물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강남동 공설운동장 앞 식당가. 흉가 처럼 만신창이가 된 건물 앞에 여전히 쌓여있는 쓰레기도 흉칙스럽지만, 이 동네 수재민들은 물이 언제 나올지 몰라 애만 끓이고 있다.
특히 '옆집은 물이 나오고 우리집은 나오지 않는' 지역이 많아 수재민들의 원성까지 사고 있다. 강남동 홍성한(洪性韓·48)씨는 "옆 동네에서 물이 나오는 걸 보니 더 목이 탄다"며 "물이 안 나오는 지역에 집중적으로 급수차를 배치해달라"고 요구했다.
김씨처럼 하루 종일 생업의 터에 나와 복구작업을 하는 수재민들은 여전히 마실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분노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 당국에서 생수 수만박스를 수재민에게 나눠줬지만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주민일수록 물 구경을 더 못했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현장의 어려움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수재민 지원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한시 라도 물이 빨리 공급돼야 물건을 하나라도 더 건질 수 있는데." 강릉시 중심가에서 운영해 온 상점이 만신창이가 됐다는 최모(38)씨는 발을 동동 굴렀다.
/강릉=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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