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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두 번 입대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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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두 번 입대하는 꿈

입력
200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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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발표된 독일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무명의 레마르크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시켰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건조한 문체로 전쟁의 무의미와 공허를 고발한 빼어난 작품이다. 파울 보이머와 동급생 20명이 지원병으로 종군한다. 조국애에 들떠 있던 그들은 머지 않아 젊은이다운 발랄함과 꿈이 모두 증발된 채, 나날이 참호 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대면한다.한 사람씩 죽고 주인공마저 전사하던 날, 날씨는 더 없이 화창했다. 그 날 사령부에는 여느 날처럼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보고서가 올라온다. 이 소설은 나치시대에 분서(焚書) 처분 되었다. 그가 훗날 감상을 섞어 쓴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주인공 역시 애인의 편지를 주우려는 순간 총에 맞아 죽는다.

그보다 한 살 어렸던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반전소설을 남겼다. 모두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네 편의 유명 소설은 한결같이 주인공이나 애인이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군대와 젊은이,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에 이미 죽음과 비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멜체르는 '문학은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이라고 주장한다.

제대 후 지금까지 몇 년마다 반복해서 꾸는 악몽이 있다. 군에 재입대하는 꿈이다. 꿈 속에서도 너무 억울해 항의를 하면 으레 '서류가 잘못 돼서 그러니 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 꿈을 꾸고 나면 '내가 정말 군대를 한 번 더 갔던가, 아니면 또 꿈을 꾼 건가' 하면서 어둠 속에서 한동안 꼼짝도 못한 채, 감각을 조정하곤 한다. 하도 기가 막히고 실감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후배가 물어오면 '군대 가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데 힘과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도 '군대는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또 하나의 학교'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내면의 소리는 그 반대였다. 무의식 속에 획일적·권위주의적인 군대에 대한 완강한 저항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꿈을 통해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의식분열과 위선을 확인하는 것이 씁쓸하다.

1년에 약 300명의 젊은이가 군대에서 사망하는데, 그 중 70% 이상이 자살이라고 한다. 감수성 강한 나이에 폐쇄된 영내에서 총과 가까이 생활하다 보면 사소한 일에도 자살충동을 느낄 법 하지만, 1984년 의문사한 허원근 일병의 예를 보면 이 통계를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다. 타살로 밝혀진 허 일병의 죽음은 악명 높던 '녹화사업'의 분위기 속에 저질러진 만행이었을 것이다. 병사의 죽음에 얽힌 의혹은 병역비리를 부채질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아들 정연씨 병역면제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 달을 넘었다. 5년 전 상황의 재현 같지만, 증언자와 구체적 물증까지 동원되고 있어 정치공방이 치열하다. 기왕 병역문제에 관심이 불붙는 터에 징병제와 지원제, 양심적 병역기피와 대체복무 논의로 확대되는 것도 기대하게 된다. 정연씨 문제는 국가적 중대 사안이 되었다. 이 문제는 대선 전에 반드시 명쾌하게 밝혀져 국민이 논란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또 다시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정치불신이 국민의 건강한 정서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느 한 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병역비리를 감추기 위한, 혹은 감춘 것처럼 만들기 위한, 거짓말이 국토만큼이나 비대해졌다. 만약 거짓말을 한 어느 쪽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 파렴치성은 용서 될 수 없다. 순수해야 할 젊은이의 국방의무를 놓고 기성세대가 정치적 목적으로 논쟁하는 현실이 누추하다. 정치인들의 도덕성 결핍 속에서는 젊은이의 애국심도 자라지 않는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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