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라는 말이 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일이 매년 반복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정확하게 들어 맞는 말이 수재와 수재민의 발생이다. 계절과 자연이 순환하면서 여름이 되면 태풍과 폭우가 쏟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생기고 다수의 수재민이 발생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땅에는 태풍과 그 피해가 너무나 당연한 연례행사로 되풀이되고 있다.200여명에 이르는 사망·실종자, 3만명이 넘는 수재민들로 나라 전체가 한숨과 눈물의 도가니가 되었다. 철로와 도로가 끊겨 국가의 동맥이 잘렸다. 전답은 물에 잠겼다. 산업시설은 가동을 멈추었다. 난리 아닌 난리다. 언론은 수재민 돕기에 나섰고 볼썽사나운 싸움만 벌이던 정치인들도 수해지역 나들이에 나섰다. 여전히 '연례행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태풍 '루사'는 1959년의 태풍 '사라'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하여 그 피해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사라'가 있었던 때로부터 40여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 아무리 그 태풍의 위력이 세었다 한들 이 같은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방글라데시나 중국의 어느 지방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장면을 우리가 매일 저녁 TV 화면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 피해를 당한 주민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현대의 발달된 토목기술, 통신수단, 예보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그 당시에 버금가는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세월 동안 우리의 자연재해 대처능력은 멈춰버린 시계처럼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인가.
따지고 보면 이번에 피해가 유난히 컸지만 예년에도 폭우와 태풍의 피해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그 때도 꼭 같은 호들갑이 있었고 온갖 대책이 이야기되었다. 도로의 절개면이 문제되었고, 난개발로 파헤쳐진 흙더미가 문제였으며, 잘못된 하천정비가 문제였다. 자연이 가져온 피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인재(人災)이다.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였더라면 그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며 최소한 경감될 수는 있었다.
누구나 잘못은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잘못은 한번은 용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한다면 그것은 용서 받기 어렵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나 한 공동체에 있어서나 같은 잘못이 되풀이된다면 그 개인이나 그 공동체는 희망이 없다. 잘못을 '연례행사'로 되풀이 하는 국가라면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한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내려앉았다. 무너지고 내려앉은 것은 그 두 곳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또 어디가 무너지고 다른 무엇이 내려앉을지 불안하기만 했다. 오히려 성한 곳이 있는지 의심할 판이었다. 어느 지역의 아파트들은 바닷모래를 써 준공과 동시에 삭아가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서울의 한강에 건설된 대부분의 다리에 하자가 발견되었고 수리를 시작했다. 양화대교의 보수를 위해 시민들은 한동안 먼 길을 돌아다니는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이것을 과거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돌리기도 했다. '빨리 빨리'를 외치던 시대의 전유물로 치부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 막대한 재해를 목도하면서 우리가 이미 지나왔다고 여겼던 그런 시대에 여전히 살고 있지나 않은지 착각하게 된다.
수재민들에게 하루빨리 도움의 손길을 뻗쳐 복구와 재활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수마가 할퀴고 간 제방과 도로와 하천과 산을 또다시 '빨리 빨리' 봉합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내년에는 이 '연례행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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