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총리공백(空白) 사태가 드디어 국정의 난맥상을 노정하고 말았다. 정부가 제출한 '2001 회계연도 세입세출결산' 등 10건의 문서를 국회가 "총리부서(副署)가 없다"는 이유로 되돌려보낸 것이다. 지난 7·11 개각으로 이한동 총리가 물러난 후 장상·장대환 두 총리서리가 연거푸 국회 인준과정에서 낙마하면서 총리공백 상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총리의 부재로 인해 보이지 않게 상당한 수준의 행정공백이 있었겠지만, 이번의 경우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행정부의 망신 사례로 남게 됐다.일이 이 지경에 이른 1차적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청와대쪽에 있다. '총리대행을 두어 행정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정치권 안팎의 많은 의견개진에도 불구하고 '총리유고 상황이 아니므로 대행은 불가능하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고집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기(傲氣)로 비춰질 수 있다. 본란을 통해 몇 차례 총리서리의 위헌성을 지적한 바 있기에 또다시 법적 논란에 관한 입장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문제는,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정국타개의 실마리를 거부하고 있는 청와대의 오만한 자세에 있다.
특히 총리임명에 관해 청와대는 당연히 한나라당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운운하는 것은 대통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의 총재를 겸하던 시절의 얘기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아예 의회의 주도권을 가진 정당에게 총리 자리를 줘버리라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인사조치에 대해서 원내 다수당과 협의하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6개월의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면 역시 청와대가 먼저 편협(偏狹)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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