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국제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2002년 국제투명성 반(反)부패 지수에 의하면 우리 나라는 10점 만점에 4.5점으로 102개 평가 대상국 중 코스타리카, 요르단과 함께 40위에 머물고 있다. 세계 교역량으로 보면 10위 권에 진입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 된 마당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우리 모습과 배치되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임명 동의안 부결 과정을 지켜보면서 10년쯤 후에는 반부패 지수가 20위 내에 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총리의 장기간 공석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집권 말기 국정 운영이 차질을 빚는 것도 사실이고, 당초 스케줄에 잡혔던 국제회의에 불참하여 국가 위신이나 대외 신인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공직자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총리서리로 임명되어 자신의 모습을 낱낱이 내보이고 결국 낙마하고 만 두 총리서리로서는 개인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달리 보면 우리나라의 투명성을 한 단계 높이고, 공직자에 대한 도덕적 잣대를 새롭게 한 계기가 되었다.
정치권은 총리 지명이 두 번에 걸쳐 불발에 그친 것을 김대중 정부와 민주당, 그리고 한나라당의 정쟁 차원으로 해석하고 싶어한다. 병풍(兵風)에 대한 맞불작전을 펼치는 한나라당, 더 이상 밀렸다가는 12월 대선에 희망이 없다고 배수진을 친 민주당, 그리고 갈 때까지 어디 다시 한번 해보자는 김 대통령의 옹고집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임명 동의안 부결을 놓고 정당끼리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행태 또한 우스운 일이다. 두 번에 걸친 총리인준 불발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심판의 시작임을 어찌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
부를 축적하기 위한 부동산 투기는 일반적 현상이었고, 아파트의 평수를 늘려 가는 것이 재산을 불려 가는 거의 유일하고도 확실한 수단이었다. 자녀들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키려는 부모의 마음으로 8학군이 명문 학군으로 자리잡는가 하더니, 이제는 명문 학원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전학하려는 학부모들이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여유있는 돈은 재개발 아파트나 주식, 유익한 벤처를 찾아 옮겨 다니고 있다. 교육열을 빌미로 위장 전입은 용인되는 상황이었고, 어느 정도의 세금 탈루는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필요악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는 달라지고 있다. IMF 금융위기의 밑바탕에는 불투명한 경영과 탈세, 특혜와 불법정치자금, 정경유착이 있었다. 그 중심에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그리고 악덕 기업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관행이 우리 자신을 옥죄는 덫임을 깨닫게 되었다.
정치적 파행의 근저에 도덕성의 붕괴가 자리잡고 있다. 두 명의 총리서리에게 적용된 도덕적 잣대가 높아 보일 수도 있으나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총리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도덕적 잣대는 총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장관을 포함한 고위공직자, 그리고 모든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에게 당연히 파급되어야 한다. 결국은 우리 국민 모두가 떠안아야 할 도덕적 잣대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개인과 집단의 도덕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공직자나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잣대를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 한다. '총리로 지명될 줄 알았으면 그렇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후회는 의미 없는 독백일 뿐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