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 수필가 피천득(皮千得·92) 옹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란 문학소년은 서울대 미대에 진학한지 3개월만에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탄다. 전공으로 택한 동양화에 회의를 느낄 때였다. 이후 45년여, 그는 동양사상으로 현대미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세계적 화가로 우뚝 섰다. 이우환(李禹煥·66·일본 다마미술대 교수)이라는 이름보다 'LEE U FAN'이라는 이름으로 국제 화단에 더 통하는 '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자다.이씨가 오랜만에 잠시 방한했다. 그의 예술론, 미학에 대한 사유가 결집된 책 '여백의 예술'(현대문학 발행) 한글 번역판 출간을 보기 위해서다. 네모 혹은 동그란 점 한둘이 찍힌 그의 작품을 보며 상상하던 작가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나이보다 십년은 젊어보인다. 더구나 그의 논리는 정연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캔버스에 붓으로 점 하나 둘 찍는 일이나, 전시장에 철판과 돌 한두 개 갖다놓는 일이 과연 예술이 파산한 시대, 인간이 퇴장한 오늘날, 표현으로서 얼마만한 새로움과 필연성을 갖는가"부터 묻는다. 이씨는 '여백의 예술'이 "도대체 지금 그림이나 조각을 왜 그리고 왜 만드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책 제목으로 쓰인 '여백(餘白)'은 그의 작업의 핵심이다. 특히 그의 최근의 넓은 캔버스는 그려진 부분보다 그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런데 그 여백이 무엇보다 커다란 울림을 준다. 이씨는 이에 대해 "이제 표현은 근대적인 '자아 실현' 같은, 주변과 절단된 오브제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캔버스는 내가 경영하는 식민지가 아니다"고 말한다.
"제 생각을 몽땅 펼치는 것이 근대주의라면 남(바깥)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 나와 남을 만나게 하는 것, 자기를 줄이는 것이 바로 여백이다." 그의 사유는 근대주의에 대한 전복이다. "서양에는 여백이란 말 자체가 없다. 'blank' 같은 단어가 여백을 의미할 수는 없다. 그리다 만 것이 여백이 아니고 화면에 자극을 줌으로써 주변이 어울려 비약하고 초월하는 것이여백이다."
이씨는 71년 파리비엔날레에 돌멩이와 유리조각으로 구성된 조각작품을 출품했을 때의 일화를 들려준다. 평론가들이 "돌멩이는 당신의 작품이 아니지 않느냐"고 비아냥했다. 이씨는 마르셀 뒤샹의 '변기'를 예로 들며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가져왔지만, 자신은 자연에서 개념규정되지 않은 것을 빌려왔다고 답했다. "나는 창조라거나 완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일본에서 주로 작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실제 1년에 7∼8개월은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활동한다. 이씨는 일본에서는 한국 냄새가 난다고 하고, 서양에서는 동양인이라고 내치고 싶어하며, 또 한국에서는 일본 색깔에 젖었다고 치부하는 편견과 싸우며 자신의 세계를 정립했다. 61년 니혼(日本)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67년 도쿄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을 이끈 이씨는 유네스코미술상, 세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시간의 여울' 등의 저서와 '멈춰 서서'라는 제목의 시집도 냈다.
2000년 11월 일본에서 초판이 나온 '여백의 예술'에는 세잔, 마티스, 몬드리안, 백남준 등 미술가와 일본 하이쿠의 대가 바쇼(芭蕉)부터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까지 문인들의 세계도 깊이있는 사유로 분석한 글이 실렸다. 한·중·일 3국의 요리를 비교하거나 포도주를 이야기한 글에서도 예술에 대한 통찰이 번득인다.
특유의 철학적이고 생동감 있는 문장으로 그는 21세기 이후의 예술을 전망한다. "문화의 개념은 변해야 한다. 작품이 나와 남을 가르는 인식의 텍스트였던 시대는 지났다. 안과 밖을 자극하고 환기시킬 수 있는 매체로서의 표현은 어떤 '무한감'을 가진 것들과 사귀지 않으면 안된다." 내년에 호암갤러리에서 이씨의 회고전이 예정돼 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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