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전에 일본 유수의 한 월간지가 '만약 문부성이 없다면?'이라는 특집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반응은 "그야, 제일 좋죠"였다. 문부성이 왜 있는지 모르겠으며 오히려 없는 게 교육발전을 위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최근 우리나라의 한 월간지도 자유시장원리에 입각한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는 기획좌담을 하면서 '문화관광부에 바둑과가 있었으면 한국바둑은 망했을 것'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한국기사들은 2000년 8월 이후 세계대회 17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이런 일도 정부가 간섭하고 개입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오늘날 각국의 정부는 도처에서 시련을 겪고 있으며 정부실패(state failure)라는 말이 심심찮게 사용된다. 우리의 경우도 관직의 권위에 대한 전통적이고 전근대적인 존경과 신뢰는 사라진 지 오래이며 민간과 시장의 비중과 역할이 커짐에 따라 정부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행정은 공익을 위한 서비스보다는 규제와 지시에 익숙하다. 군사정부시대에 모든 일을 일사불란하게 정부가 주도했던 관행과 유풍 때문일까. 그러다 보니 오히려 민간의 발전과 잠재력을 저해하는 정부 부처에 대한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은 정부보다 국회가 왜 있는지 모를 사람이 더 많겠지만.
우리 정부에, 바꿔 말해 공직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공개념과 서비스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기본적으로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것을 모르거나 잊고 있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이 있지만, 마시는 물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공개념과 서비스정신의 부족으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은 많다. 우선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부문의 개혁이 가장 부진하다. 부처이기주의도 여전해 A부처의 발표를 B부처가 뒤집고 부처 간 합의사항에 딴 소리가 사후에 나온다. 정부 직제개정안은 입법예고도 하지 않으며, 그나마 힘없는 부처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는다. 또 내년의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자기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경쟁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공개념에 입각해 전체를 총괄하는 데스크기능도 미흡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대변인을 통해 "국정에 전념하겠다"고 말해 왔다. 우습고 공허한 말이다. 대통령은 원래 국정에 전념하라고 국민들이 뽑아준 사람이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대통령이 국정에만 전념하겠다는데도 손발이 서로 안 맞고 자주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다.
공공건물을 지을 때도 그 곳이 대국민 서비스의 현장이라는 의식이 없다. 서초동 법조건물이 TV에 비칠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그런 건물을 지은 건축주의 의식이 끔찍하다. 준공을 앞둔 국세청 신청사는 감히 범접을 못할 '위용'을 갖추고 있어 볼 때마다 질린다. 시민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부근의 민간 건물은 경쾌하고 산뜻해 보이지만, 악착같이 도로변까지 잇대어 지은 국세청 건물은 결코 국민의 건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땅이 더 넓고 층수를 더 높일 수 있었다면 훨씬 더 군림하는 건물을 지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는 것같다. 조금이라도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생각을 했다면 그토록 무지한 건물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올해 말 현직에 배치되는 예비 신임 사무관 274명 전원을 대기업에 위탁해 서비스교육을 받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비스 극대화를 통한 고객 만족이라는 민간부문의 경영정신을 배우자는 취지다. 그러나 사실은 그 위의 높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고객이 OK할 때까지'라는 구호를 내건 민간기업의 한 간부는 "OK할 때까지가 아니라 KO될 때까지 해야지요"라는 농담까지 했다. 공개념과 서비스정신에 입각해 무엇을 어떻게 국민이 OK할 때까지 할 것인가에 관한 근본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이 정부는 바로 '국민의 정부' 아닌가.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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