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도까지 올라간 한낮의 열기가 자정 넘어서도 식을 줄 몰랐다. 덤불 사이로 모기 군단이 스태프와 배우들 몸을 공습했다. '광복절 특사'(감독 김상진·각본 박정우) 전주 촬영장은 늦여름 열기로 후끈했다.'광복절 특사'는 땅굴을 파고 탈옥한 두 죄수 최무석(차승원) 유재필(설경구)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것을 알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 전주공고 옆에 지은 교도소 세트에서 차승원(31)과 설경구(34)가 탈옥하는 장면이 8월 30일 촬영분이다. 8억원을 들여 여름 내내 지은 '오수 교도소'를 벗어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두 배우는 진흙탕 속을 허우적댔다.
"나라도 8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으면 최무석처럼 탈옥했을 거예요. 무식하고 용감한 최무석처럼은 못하겠지만요." 최무석은 빵 하나 훔치다 붙잡힌 뒤 탈옥과 재수감을 반복하느라 8년으로 형량이 엿가락처럼 늘어난 죄수이다. 최무석은 어느 날 숟가락 하나를 발견하고는 5년을 고집스럽게 땅굴을 파고 감옥 문을 넘는데 성공한다. 탈출 성공 장면에서 차승원은 애드리브로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처럼 두 팔을 벌리고 만세를 불렀다.
"코미디를 세 편 연속으로 하니까 어떻게 웃겨야 한다는 걸 이제 알겠어요." 코미디의 생명은 즉흥성에 있다고 말하는 그의 어투엔 여유가 묻어나온다. 2년 전 영화 '리베라 메'까지만 해도 그는 섹시하며 다재다능하지만 특징 없는 배우였다.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에서 싸움꾼 출신 체육교사로, '라이터를 켜라'에서 능청스러운 건달로 확실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코믹 버디 무비'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대본을 세 번 이상 들여다보고 촬영에 임하던 꼼꼼한 태도도 조금 편해졌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웃음을 만들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될 수 있으면 외우지 않고 벌어진 상황 속에서 (설경구와) 함께 놀려고 해요." 차승원은 차기 작품도 코미디냐는 질문에 장난스럽게 눈을 치켜 떴다. "제 카리스마가 많이 죽어 보이기 때문에, 이제는 저도 멜로 하고 싶어요" 간절함과 코믹함을 반씩 섞은 눈빛이다.
비슷비슷한 배역에 계속 나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신라의 달밤'의 최기동과 '라이터를 켜라'의 양철곤, 최무석 모두 조금씩 나랑 닮았죠. 그렇지 않으면 이상했겠죠"라고 말문을 자른다. 스타일의 반복이 아니라 깊이가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는 반문인 듯했다.
"물기가 마르면 진흙이 바싹 말라서 피부가 막 당기죠. 몸은 오슬오슬 떨리구요. 정말 괴롭죠." 차승원은 이번 영화 촬영이 결코 만만치 않다고 했다. 모니터로 자신의 연기를 점검하며 다시 촬영에 들어가는 그의 눈빛이 진흙 속에서 빛났다.
/전주=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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