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22)"물옥잠아, 네가 부럽구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22)"물옥잠아, 네가 부럽구나"

입력
2002.09.02 00:00
0 0

불현듯 궁금해 졌습니다. 지난 주 부레옥잠 이야기를 했는데 주변에 있는 이 식물을 찾아서 봉황의 눈을 닮은 꽃잎이나 공기주머니라도 들추어 보셨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오늘도 부레옥잠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저와 그리 특별한 인연이 없는 식물이었는데 저도 이 글을 쓰는동안 이리저리 관심을 깊이 두다보니 새삼스런 모습들이 참 많이 보이더라구요.부레옥잠이 고운 꽃을 피워내는 이유는 분명 곤충의 힘을 빌어 꽃가루받이를 하는 충매화이기 때문일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저는 이 식물의 씨앗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니 외국 땅에서 들어온 낯선 귀화식물이라 자신을 알아보고 찾아와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이 거의 없기 때문이랍니다. 실제로 꽃가루받이가 잘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씨앗을 맺을 수 없는 것이죠. 이제나 저제나, 자신을 찾아줄 곤충을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부레옥잠의 꽃송이들을 보노라니 그 고운 연보라색 꽃빛이 분칠한 얼굴처럼 허망하게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부레옥잠이 아니지요. 이 식물은 대신 영양번식을 왕성하게 합니다. 부모가 되는 식물체의 밑부분에서 줄기가 나오고 여기에 눈이 생겨 곧 아들 식물, 다시 손자식물을 줄줄이 만듭니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정상적인 부모의 유전자가 만나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만든 것이 아니니 아들이나 손자가 아니라 복제품이라고 해야겠지만요.

어찌됐든 이러한 방식으로 수없이 많은 개체들이 만들어집니다. 물에 떠있는 부레옥잠을 들어 올려보면 물 속에서 줄줄이 이어진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퍼져나가며 물위를 넓게 덮고 바람 따라 물길 따라 잘라지고 흘러가기도 하면서 넓게 세력권을 확장합니다. 한 실험결과에 의하면 봄에는 큰 부레옥잠 하나였던 것이 1년 사이에 752개로 늘어났다고 하니 얼마나 왕성한 번식력입니까.

부레옥잠이 자생하는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을 비롯한 따뜻한 나라에서는 너무 많이 퍼져나가 물속의 산소를 많이 써버리고 물속으로 볕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등 생태적인 문제가 발생하죠. 또 배가 가는 길을 막거나 수력발전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어 세계 10대 문제잡초로 뽑히는 불명예를 안기도 합니다.

부레옥잠의 뿌리도 무성합니다. 보통 식물처럼 생긴 뿌리가 있고 그 뿌리의 가닥가닥 마다 솔이 달린 것처럼 잔뿌리들이 아주 발달해 있지요. 이 잔뿌리들은 효과적으로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이기 위한 것은 물론이고, 물위에 떠 있을 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리고 곱기만한 물에 핀 꽃 한 송이의 삶이 이렇게 복잡 다단한데 하물며 인간들의 세상살이는 오죽할까 싶습니다. 문득 멀리서 들어와 새로 고생하는 부레옥잠 말고 아주 오래 전부터 이땅에 살아오던 물옥잠이 생각납니다. 화려함에선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그 깊이 있는 보랏빛이 아름다운 우리꽃 말입니다.

이유미/국립수목원 연구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