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北·日화해와 과거사 청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北·日화해와 과거사 청산

입력
2002.09.02 00:00
0 0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북한 방문은 동아시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는 북미관계를 제외한다면 동아시아에서 마지막 적대관계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북미관계 개선에도 전기가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이 과거청산 차원에서 북일 화해를 이뤄내려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준다면, 동아시아지역협력체제는 새로운 차원을 맞을 것이다.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은 2000년 4월 북일교섭 재개 이래 교착상태에 빠진 두 나라 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1990년대 북일관계에 난관을 조성한 핵심문제가 일본인 납치의혹 문제였다. 이 부분은 일본이 뚜렷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북측의 성의있는 태도가 중요한데, 이 점과 관련하여 북한은 테러국 의심을 벗기 위해서도 모종의 대책을 세웠음에 틀림없다. 미사일·핵 등의 문제는 북한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없는 쌍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결단은 그의 '깜짝쇼'는 부차적이고, 김정일의 태도가 더 중요한 동기를 제공했다고 판단한다. 고이즈미 방북에 맞춰 경의선 단절구간 복원, 개성∼문산간 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 등의 문제에 합의가 이뤄진 것이 단적인 예다.

북은 8·15경축사절 파견, 부산아시안게임 선수단 파견에도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들어서 경제의 자율적 흐름을 중시하는 조치를 취하고, 나아가 조심스럽지만 시장경제도 어느 정도 용인하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필자는 지난 5월 초 평양에 갔을 때 여러 면에서 변화를 읽었다. 무엇보다도 아리랑축제를 장기간에 걸쳐 열고 외부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이려고 노력한 것, 여기저기 야시장을 연 것 등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북한 주민들의 행색을 볼 때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방향전환이었다. '고난의 행군'을 계속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처럼 북이 거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 적은 없었다. 남에서 오는 돈은 푼돈이고, 그것도 일부에서는 퍼주기만 한다고 아우성이다. 미국 부시 정권의 행태를 볼 때 북의 선택은 일본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이 북일수교 조건으로 요구한 일본 정부의 사죄, 배상·보상 등은 일정하게 모양만 갖춰지면 '대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과거청산을 일본인 납치의혹 문제 등과 일괄적으로 타협하겠다는 자세다. 사죄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 수준일 것이고, 한일협정 타결시와 같이 무상·유상의 경제협력 방식으로 처리하겠다는 태도다. 액수는 50억∼100억달러 수준으로 추측하고 있다.

일본은 북과의 정상화를 대만, 한국, 중국과 정상화할 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냉전시대 작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문제, 일본군 성노예문제 등 과거청산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게 등장하지 않았을 때였다. 최근 일본법원이 731부대의 세균전 소송, 강제징용 중국인 탄광노동자 소송 등에서 잇달아 일제의 비인간적 행위를 인정하고 일본 정부의 보상입법조치를 권고한 것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북일 화해는 일본인 휴머니티의 바로미터가 될 수 밖에 없다.

북일화해에서 한국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고이즈미 방북에 정부는 적극 지지의사를 표명하였거니와, 얼마 전에는 33명의 여야 의원이 한일협정이 북일수교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국이 북일 정상화를 위해 일본의 사죄와 보상·배상을 강력히 요구해야 하는 것은 그래야만 대일관계를 과거와는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진실한 우호친선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지역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발전의 핵심적 과제이기도 하다.

김정일 못지않게 고이즈미도 화려한 무대연출가 기질이 있다. 9·17회담을 겉만 화려하게 장식하려 할지, 동아시아지역협력관계에 신기원을 이룩하려는 의지를 보일지 우리 모두 지켜볼 일이다.

서중석/성균관대 교수·역사문제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