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냉전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가 1950년 한국전쟁 후 52년 만에 뚫리게 됐다. 남북은 30일 경협추진위 2차 회의에서 2000년 6월15일 정상회담 이후 8번이나 약속하고도 이루지 못했던 철도·도로 연결공사의 첫 삽을 18일 동시에 뜨기로 했다. 영원히 금단의 지역으로 남을 것 같았던 DMZ가 한반도의 동·서쪽에서 잇달아 열리고, 이 통로를 통해 남북의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날도 머지 않았다.남북이 합의한 개성공단 개발, 임진강 수해방지, 금강산 육로연결도 한결같이 DMZ를 넘나드는 사업이다. 남북은 여기에다 이중과세방지 등 4대 경협합의서를 조속히 발효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협의체를 가동함으로써 안정적 경제협력과 교류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키로 했다.
물론 합의의 압권은 철도·도로 연결 사업이다. 이는 다른 단기성 사업과 달리 남북 화해·협력의 안정성,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적게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무엇보다군사당국간 대화와 병행돼야 하고, 지뢰제거 장비 지원 등 각종 교류와 개성공단 건설 등 여타 경제협력 사안들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도록 돼 있다. 말하자면 군사적 신뢰구축, 교류 및 경협 등 다차원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핵심 고리'가 풀린 셈이다.
이번 합의는 국제정치적으로도 획을 긋는 사건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올초 도라산역에서 남북화해의 가늠자로 간주했던 경의선 공사를 재개함으로써, 북한은 상당부분 '악의 축' 너울을 걷어낼 수 있게 됐다. 향후 경의·동해선 등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하기 위한 국제컨소시엄에 미국을 비롯한 4강이 참가하면, 사실상 동북아 냉전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 초보적 단계이지만 한반도를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로 재편할 야심찬 구상도 논의했다.
남북이 예상 이상으로 성대한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존폐 기로에 서있던 정부의 햇볕정책도 6·15 정상회담 당시에 버금가는 탄력을 받게 됐다. 북한과 실천 없는 합의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DJ 정부는 임기 전에 경의선 연결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가시적인 업적을 남기게 됐다.
이 같은 남북관계의 진전은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격랑을 맞고 있는 국내 정치의 판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우리 내부에는 경의선 연결을 '인민군에게 진격로를 열어주는 일'이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 등 냉전적 사고와 이를 둘러싼 갈등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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