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8월31일 미국 프로권투 선수 로키 마르시아노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46세였다. 로키 마르시아노의 본명은 로코 마르케자노다. 이름에서 대뜸 짐작할 수 있듯 이탈리아계 백인이다. 이제는 흑인들의 독점적 무대가 돼버린 듯한 프로 권투의 세계에서 로키는 찬란한 전설을 뒤로 하고 사라진 마지막 백인 영웅이었다. 24세 때인 1947년 리 에퍼슨을 3회 케이오로 누르고 프로에 데뷔한 그는 다섯해 뒤인 1952년 조 월코트를 12회 티케이오로 누르고 WBA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된 이래 1956년 은퇴할 때까지 여섯 차례나 타이틀을 방어했다. 로키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그의 프로 통산 전적은 49전 전승, 43 케이오승이다.로키 마르시아노의 전설은 1976년 '로키'라는영화가 나온 뒤 더욱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영화 '로키' 시리즈는 물론 로키 마르시아노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영화 속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주인공 이름이 로키라는 것, 그 영화의 각본을 쓰고 주인공 역을 맡은 실베스터 스탤론 역시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는 것 등 영화 안팎의 사정은 관객의 상상력 속에서 영화 '로키'를 로키 마르시아노와 이어주기에 충분했다. 가난과 무명 속에서 허덕이다 이 영화로 단번에 '미국의꿈'을 이룬 스탤론 자신도 '로키'가 로키 마르시아노의 생애와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 내용을 버무려놓은 것이라고 털어놓은바 있다.
필라델피아 슬럼가에 사는 삼류 복서의 좌절과 분투와 사랑을 들큼하게 그린 '로키' 1탄은 그 해에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을 받았다. 그러나 뒤이은 '로키' 시리즈는, 같은 배우가 주연을 맡은 '람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레이건 정권이 들어선 뒤 반소(反蘇) 선전물 냄새를 물씬 풍겼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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