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안양경기장에서 K리그 안양―대전 전을 지켜보는 동안 심란한 생각들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절반도 못 채운 관중석은 썰렁했고 그라운드에서도 '뻥차기'를 연상케하는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속출해 흥미를 반감시켰다. 짜임새있고 다이내믹한 플레이는 별로 찾아보기 힘든데다 심판에 대한 감독·선수들의 불신에 찬 눈초리는 여전했다. 한마디로 관중의 시선을 붙잡기에는 턱없이 부실한 경기였다.K리그뿐만이 아니다. 해외진출을 둘러싼 이런 저런 얘기도 썩 유쾌하지 만은 않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풀햄)가 해트트릭을 뽑아내고 페예노르트에서 송종국과 자웅을 겨룰 오노 신지가 주요 경기때마다 결승골을 터뜨리고 있는 반면 태극전사들의 활약은 그리 신통치 않다. 프리미어리그에 비해 격이 떨어지지만 설기현(안더레흐트)이 벨기에 리그 초반 3경기 연속골을 뽑아냈다는 게 그나마 반가운 뉴스다. 무적선수가 된 안정환 유상철은 물론 터키리그 이적을 놓고 구단과 마찰을 빚고 있는 김남일(전남) 문제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를 고스란히 떠안으며 연일 만원사례를 이뤘던 K리그 인기가 한풀 꺾이고 장밋빛 꿈에 부풀던 유럽 진출이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판정시비나 유럽진출은 우리 축구계의 허약한 체질이 개선되지 않는 한 실타래 풀듯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성격의 문제들이다. 우수 인재를 심판으로 양성하지 않고 감독이 심판을 우습게 아는 풍토에서 월드컵을 치렀다는 이유만으로 심판의 권위를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유럽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 노하우를 갖춘 에이전트가 드문 현실에서 매끄러운 해외진출을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혹자는 개학을 맞아 일시적으로 관중이 줄어든 것일 뿐 K리그의 위기를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K리그만이 아니라 우리 축구가 살길을 진지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대증요법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나 또한 이런 문제를 풀어나갈 당사자인 축구인의 한 사람이지만 별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선수와 감독, 심판은 물론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이 축구 가족이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신뢰부터 회복하자고 제의하고 싶다. 일단 우승과 순간의 인기는 뒤로 미뤄놓고 서로 한발씩 물러나 미래의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자는 얘기다.
/허정무 전 대표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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