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수파의 거두인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은 존 볼튼(사진)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을 가리켜 "내가 만약 선과 악의 마지막 전투에 나설 운명이라면 볼튼과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대북 강경발언을 해 온 볼튼 차관은 예상대로 29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일일이 거론한 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재규정했다.볼튼 차관은 "북한이 즉각 핵사찰을 받지 않으면 1994년 제네바 합의의 미래가 심각한 우려에 빠질 것이고, 경수로 건설도 지연될 것"이라면서 제네바 합의의 파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볼튼 차관은 이어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은 수사학이 아닌 사실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볼튼 차관의 '악의 축' 발언이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에서, 그것도 남북 경협추진위 2차회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볼튼 차관의 발언은 사견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고, 대북정책에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볼튼 차관은 북한이 오래 전에 예멘에 스커드 미사일 부품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경제제재를 취하도록 주도하기도 했다. 때문에 볼튼 차관의 이번 대북 비난은 조만간 이행될 것으로 기대됐던 미국의 대북 특사파견 등 북미대화 재개가 순탄치는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올 초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발끈했던 북한도 볼튼 차관의 서울 연설에 분개할 게 분명하다. 북한은 특히 볼튼 차관이 서울에서 강경 발언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한 남한 정부에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도 있다. 볼튼 차관은 이날 북한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한미일 공조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볼튼 차관의 강경발언이 북미대화 재개를 염두에 둔 기선 잡기용이라거나, 남한으로부터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등을 얻어내기 위한 외교적 기교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 공화당 행정부의 실력자인 볼튼 차관의 대북 직격탄은 해빙무드에 진입할 조짐을 보인 남북·북일 관계 등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에서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볼튼 차관의 대북 발언 수위를 사전에 조율하는 당당한 한미공조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