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 양국(讓國)의 조칙을 내림으로써 한국의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합병 조약은 그보다 일주일 전인 8월22일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과 조선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사이에 조인됐다. 8개조로 된 이 조약은 제1조에서 한국 정부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 양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건국된 지 27대 519년 만에 역사의 뒤꼍으로 물러났다.합방 직후 유학자 황현(黃玹)은 절명시(絶命詩) 네 편을 하룻밤 사이에 짓고 음독 자살했다. 그 가운데 세 번째 시는 이렇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물 속으로 가라앉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를 되새기니/ 어렵구나, 세상에서 글 아는 사람 노릇 하기가(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이 날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이어진 일제 강점기가 우리 민족 공동체에 남긴 가장 큰 상처는 친일파(정확하게는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 파시즘에 대한 협력자'라고 해야겠지만, 관례에 따라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르기로 하자)의 양산일 것이다. 일제의 식민 통치가 장기화하면서 해방의 희망이 점점 졸아들고 특히 태평양 전쟁 초기에 일본이 파죽지세로 승리를 거듭하자, 지식인들을 포함한 조선의 명망가 다수는 친일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부정을 통해 탄생한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의 친일 경력을 친미반공으로 물타기하며 이른바 주류집단을 형성했다. 친일의 당사자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그들의 후대가 장악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친일파에 대한 공개적 평가 조차 쉽지 않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은 그리 믿을 만한 말이 못 되는 것 같다.
고 종 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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