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는 각종 전후(戰後) 보상 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하지만 피해 사실은 인정하고 보상입법 등 정치적 조치를 촉구하는 판결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또 피해 발생으로부터 20년이 경과하면 불법행위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자동소멸한다는 민법상 제척(除斥)기간 원칙의 적용을 놓고는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도쿄(東京) 지방재판소는 27일 731부대 등 구 일본군의 세균전 피해 소송 선고공판에서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때 중국이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는 등의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세균전의 피해는 참으로 비참하고 심대해 구 일본군의 행위가 비인간적이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어떤 형태의 보상 등을 검토한다면 국회가 고차적 재량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입법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1999년 야마구치(山口)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下關) 지부의 한국인 등 군대위안부 피해 소송 판결에서도 "피해자의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고 피해를 인정하고 "국회는 배상입법을 게을리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1998년 네덜란드인 포로 학대 피해 소송에서의 포로 학대 사실과, 1999년 중국인 전쟁피해자 소송에서 731부대의 인체실험 사실을 인정했다.
일본 정부측도 1990년 이후 제기된 60여 건의 전후 보상 소송에서 사실관계는 다투지 않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한일·중일 국교정상화와 관련한 조약 등에서 해당 국가 차원에서 청구권을 포기했다는 등 법률론으로 대항하고 있다.
일본 법원은 이같은 법률론을 받아들여 배상청구를 기각하면서도 "인도적 견지에서 빨리 적절한 대응을 꾀하는 것이 일본의 정치적·행정적 책무" 라든지 "입법조치나 외교교섭을 통한 대응이 필요하다" 는 내용을 판결문에 넣고 있다.
제척 기간 문제는 4월 26일 후쿠오카(福岡) 지방재판소가 중국인 강제 징용자 출신 15명이 미쓰이(三井) 광산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현저히 정의와 공평의 이념에 반한다면 적용하지 않는다"는 최고재판소 판례를 원용해 미쓰이 광산에 1억 6,500만엔을 지급하라고 판결, 처음으로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뒤 7월 8일 히로시마(廣島) 지방재판소는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중국인 징용자 5명이 니시마쓰(西松)건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제척 기간을 적용해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종전 이후의 사건이지만 지난해 8월 23일 교토(京都) 지방재판소는 강제 징용 한국인을 송환하려다 침몰한 우키시마(浮島)호 소송에서 한국인 승선 생존자 15명에게 일본 정부가 각각 300만 엔씩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한편 일본 국회 차원의 보상입법 움직임으로는 군대위안부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국가보상 실현을 위해 민주, 공산, 사민당 등 3개 야당이 지난해 공동으로 참의원에 공동으로 제출한 '전시 성적 강제 피해자 문제 해결 촉진법안'이 7월 18일 간신히 심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야당측이 피해자와 연구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자민당 등 여당측은 반대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日법원 피해인정 판결
▶군대위안부 소송(1999년)=피해자의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국회는 배상입법을 게을리 했다.
▶우키시마호 침몰 소송(2001년 8월)=국가는 징용에 의해 일본에 끌려 온 원고들을 안전하게 부산까지 송환할 의무가 있었다.
▶강제징용 중국인 탄광노동자 소송(2002년 4월)=강제연행과 강제노동은 국가와 미쓰이 광산이 공동으로 계획해 실행에 옮겼다. 현저히 정의와 공평의 이념에 반하는 경우 제척 기간을 적용하지 않는다.
▶731부대 세균전 소송(2002년 8월)=세균전의 피해는 참으로 비참하고 심대해 구 일본군의 행위가 비인간적이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보상을 검토한다면 국회에서 고차적 재량에 의해 결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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