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의 좌담 '공급 과잉 시대의 한국문학'은 평론가들이 모여 최근 출간된 책을 토론하고 주목할 만한 문학 동향을 찾기 위해 마련된 것. 이 자리에서 정씨는 지난 몇 년 동안에 책들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 작가들은 통상 아무리 짧아도 3, 4년 만에 한 권씩 책을 냈다. 하지만 '전업 작가'라는 개념이 생긴 90년대 이후의 작가들은 1년에 한 권 이상씩 책을 낸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좌담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소설집, 시집은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1년 내내 집중호우 맞는 기분이다."정씨는 단지 작품의 대량 생산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문학의 체질 저하를 가져왔다는 데 주목한다. 그는 최근의 작가들이 원고를 기계처럼 찍어내, "목숨 걸고 쓴 작품이라는 자신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함께 토론한 평론가 심선옥씨가 "지난 3개월 동안 발표된 작품들에서 위기에 대응할 만한 텍스트의 긴박감,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에 대해 그는 "작품이 보이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것은 비평의 무기력을 야기한다"고 답했다. 쏟아지는 작품 중에서 비평할 만한 텍스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씨는 최근 몇 년간 첨예한 논제가 되었던 '문학 권력'문제도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감정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평은 좋지 않은 작품들이 양산될 때 그 의미를 밝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 비평은 그걸 못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국 사회는 문화적으로 대중 중심의 사회로 바뀌었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봉변을 당할까 봐 비평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중의 시대에서 문학의 질적 저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 평론가 김인호씨는 '동서문학'에 실린 평문에서 90년대 이후 대중 중심의 사회를 '키치의 시대'라고 이름 붙인다. 그는 90년대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소설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걷는 듯한 소설들이 새롭게 등장했다고 분석한다. "개성은 다르지만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듯한 일련의 작가군이 등장했다. 궁극적으로는 문학이 상품화에 성공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문제는 문학성과 대중성의 차원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본격문학의 저항적 특성마저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상품화한다고 상품화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문학의 꿈마저 전략적 상품으로 만들어 포장한다면, 새처럼 날아다녀야 할 문학이 포장지 속에 갇혀 질식하고 만다"고 김씨는 지적했다. 그는 본격문학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대중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평론가들 계간지 가을호서 잇단 비판
"양적으로만 보면 요 근래에 문학 책은 과도할 정도로 대량 생산되고 있다. 작가들이 퇴고할 여유도 없이 원고를 줄기차게 찍어낸다." 평론가 정과리(44·연세대 교수·왼쪽)씨가 계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실린 좌담에서 이렇게 개탄했다. 작가들이 충분한 집필 기간을 거치는 대신 짧은 시간에 작품을 숨가쁘게 쏟아내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대중 중심의 시대에 영합한 작품의 양적인 증가가 한국 문학의 질적인 하락을 초래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평론가 김인호(45)씨는 계간 '동서문학'에 발표한 비평 '본격문학이 대중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에서 수준 이하의 문학 작품이 상품화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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