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프로축구 성남―대전 경기 관람을 위해 초등학생 자녀 2명과 성남운동장을 찾은 김형중(39·회사원)씨는 "두번 다시 경기장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대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사라져 15분 가량 경기가 중단되자 김씨는 그 이유를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가족과 함께 보기 민망한 경기였다"고 혀를 찬 김씨는 "정확하지 못한 판정도 문제지만 감독들의 무절제한 행동이 더 볼썽사납다"고 꼬집었다.판정시비 때마다 각 구단 감독이 연출하는 비상식적인 항의는 그라운드의 판관인 심판의 권위 추락은 물론 K리그의 인기 하락을 부추키는 요인이다. 특히 판정이 심판 고유의 전문 영역임을 감안할 때 심판을 향한 감독들의 삿대질과 폭언, 몸싸움은 "무법천지를 연상케 한다"는 비난을 낳고 있다.
감독들이 모호한 판정에 사사건건 '액션'을 취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감독 대부분이 현역시절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한 반면 대다수 심판들은 선수 경력이 일천하다. 때문에 감독들이 심판의 자질과 능력을 얕잡아보는 풍토가 생겨났고 이런 사고방식이 그라운드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모 구단의 감독은 "프로 문턱도 밟지 못한 심판이 격렬한 K리그의 경기를 원활히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단 어필해야 나중에 보상성 판정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인식도 한몫하고 있다. 몇몇 감독은 "거칠게 항의한 뒤 다소 유리한 판정을 얻어낸 경험이 있다"고 인정했다.
또 특정팀에 특정심판을 배정하는 사례가 잦아 특혜의혹과 함께 감독의 불신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 "재정이 약한 우리 구단이 단골 희생양이 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이태호 대전감독의 항변은 모종의 커넥션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선수 경력 부족을 이유로 판정을 무시하는 국내 감독의 태도는 넌센스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유럽 빅리그에서도 프로선수 출신의 주심은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적 명성을 쌓은 '외계인 심판' 피에르루이기 콜리나(이탈리아)도 15세 때 아마추어 클럽에서 후보로 뛴 게 선수 경력의 전부다.
K리그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감독들의 몰상식한 행동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심판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K리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축구평론가 오은 스위니(아일랜드)씨는 "판정논란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지만 K리그만큼 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리그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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