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안개정국 속에 막판 권력 투쟁이 치열하다.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11월에 개최되는 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全大)와 당·정·군 핵심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임기 만료가 맞물려 있다. 국가 원로들과 당·정·군 지도자들이 모여 정국 현안을 논의한 8월의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권력 교체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오리무중이다. 중국 관측통들은 아직까지 내부 권력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江 주석이 10월 말에 미국을 방문하고 이어 멕시코 아·태 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뒤 11월 8일 열릴 제16기 당대회에서 비로소 권력 이양 여부가 공식화될 것이라는 전망 정도이다.
홍콩과 일본 언론들이 江 주석의 권력 이양과 관련해 각자 엇갈린 보도를 내놓고 있지만 가장 설득력있는 시나리오는 江 주석이 중앙군사위 주석직만 유지하고,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은 예견됐던 대로 제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에게 이임한다는 내용이다. 국방대학 내 江 주석 판공실도 이미 크게 수리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중국 언론들은 江 주석만 부각시키고 胡 부주석은 띄우질 않고 있으며, 인민일보 등 주요 당기관지들도 江 주석을 핵심으로 단합해 위대한 과업을 이루자고 주장하고 있어 유임 공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낳고 있다.
소식통들은 두 가지 변수를 든다. 江 주석의 추종 세력들이 胡 부주석의 권력기반이 미약하다는 점을 들어 당총서기직 이양에 반대하는 등 江 주석의 일정 기간 권력 연장 주장을 펴고 있다는 점과, 江 주석의 경쟁자인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동반 퇴진 압력이다. 江 주석이 전면 퇴진하지 않을 경우 李 상무위원장 등 보수파가 권력지분을 요구하는 등 중국 권력 구도가 복잡하게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江 주석의 결단이다. 최근까지 그는 "나는 여전히 젊다"고 의중을 표시하면서 공식적인 권력 이양 발언은 자제하고 있다. 江 주석은 현재 전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이나 덩샤오핑(鄧小平) 만큼의 힘은 없지만 자신의 의중을 확실히 밝혔을 때 극력 반발할 세력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믿을만한 중국 소식통은 주룽지(朱鎔基) 총리와 리루이환(李瑞環)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江 주석의 유임에 내심 반대하면서 의중을 확실히 밝히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李 상무위원장의 국가주석직 승계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李 상무위원장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핵심 인물로 중국의 얼굴 마담 격인 국가 주석으로 곤란하다는 여론이다.
그는 또 미국이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며 89년 이후 한번도 미국을 방문하지 못했고 부패, 무능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중국 인민들에 인기가 없다고 중국 전문가는 설명했다. 한편 국무원 총리에는 원자바오(溫家寶·57) 부총리의 발탁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제4세대 지도자들은 누구/원자바오 차기총리 1순위
제4세대 지도자 군(群)의 용의 머리는 장쩌민 주석의 후계자 O순위로 각인된 후진타오(60) 부주석이다. 당서열 5위로 공청단 출신인 그는 2월에 방중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칭화(淸華)대 연설을 주관했고, 미국을 방문해 외교적 성과도 거뒀다. 당·정·군을 대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21세기의 중국 지도자로 부각됐다. 40세에 전인대 중앙 후보위원에 선출됐고 세련된 용모와 매너, 업무 수행 능력 등 차세대 영도자로 손색이 없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원자바오(60·사진) 부총리는 이미 주룽지 총리 밑에서 금융과 농업을 관장해 왔다. 44세에 당 기밀을 좌지우지하는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발탁돼 중요 정보 업무를 원만히 수행했다.
중앙정치국 위원(서열 15위)으로 톈진(天津) 출신이며 베이징(北京) 지질대학 대학원을 나왔다.
앞의 두 사람보다 서열은 뒤지지만 江 주석을 10여 년이나 보좌해 '江 주석의 그림자'로 불리는 최측근 실세로 쩡칭흥(曾慶紅·60) 당 조직부장이 있다. 그는 江 주석이 1989년 상하이(上海)시 당서기에서 총서기로 영전해 올 때 같이 온 유일한 사람으로 당 중앙판공청 주임을 지낸 뒤 조직부장으로 발탁됐다. 혁명 열사 후손에다 발이 넓고 江의 적극적인 지지로 두 단계를 뛰어넘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의 영전이 점쳐지고 있다.
그밖의 주요 4세대 인물은 다음과 같다. 황쥐(黃菊·64) 중앙정치국 위원(서열 9위), 상하이시 당서기, 칭화대 전기과 졸업 우방궈(吳邦國·61) 중앙정치국 위원(10위), 부총리, 안후이(安徽)성 출신, 칭화대 무선전자학과 졸업 지아칭린(賈慶林·62) 중앙정치국 위원(17위), 베이징시 당서기, 산둥(山東)성 출신, 하북 공학원 전력과 졸업 리창춘(李長春·58) 중앙정치국 위원(19위), 광둥(廣東)성 당서기, 랴오닝(遼寧)성 출신, 하얼빈 공대 전기공정과 졸업 우관정(吳官正·64) 중앙정치국 위원(20위), 산둥성 당서기, 장시(江西)성 출신, 칭화대 동력과 졸업
■中 권력기관과 기능/중앙군사委 주석이 실세
중국의 핵심 권력은 각각 당·정·군 최고 지위인 당총서기, 국가 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이다. 그리고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과 이들 권력 조직과 인민을 연계하는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있다. 권력 서열은 일반적으로 사람에 붙인다. 1위는 위의 세 직위를 모두 겸하고 있는 장쩌민이고,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 리펑이 2위이며, 국무원 총리 주룽지,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리루이환, 국가부주석 후진타오가 3∼5위 순이다.
장쩌민 주석이 당 위주의 총서기를 퇴진하면서도 중앙군사위 주석은 왜 유지하려고 하는가. 총서기는 임기가 있고 군사위 주석은 임기가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사실은 실질적 권력이 어디에 있느냐가 관건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권력은 총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또 보통선거가 확립 안 된 나라의 실질적인 힘은 군부가 장악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총서기: 당 중앙위원회의 총서기로 중앙정치국 회의와 상무위원회 소집을 책임지며 중앙서기처 임무를 주재한다. 1989년 6·4 사태 이후 장쩌민이 승계했다.
국가주석: 대내외로 국가를 대표한다. 실권적 지위보다 상징적 성격이 강하다. 법률을 공포하고 총리, 각부 부장 임면권을 갖는다. 계엄령, 선전포고권 등이 있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전국 무장 역량을 영도한다. 전인대 및 상무위원회에서 선거·파면한다. 당장(黨章)과 헌법은 당과 국가 모두 중앙군사위를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
■中 권력교체 역사/혁명·발전놓고 대립·갈등
중국 권력 구조의 특성과 노선은 지도층의 갈등과 연합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좌와 우, 보수와 개혁의 양면을 완급의 속도로 왕래했고, 혁명(紅)과 발전(專)이라는 두 목표의 우선 순위에 따라 대립과 갈등 속에 자리바꿈이 이어졌다.
신중국 수립 이후 경제계획을 시행하면서 대두됐던 '전(專)' 세력은 대약진 운동(1958∼60)을 분수령으로 정치 제일(紅)의 광풍 속에 퇴조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경제 파탄으로 실용주의(專) 세력이 복귀하면서 현실 경제주의자 류샤오치(劉少奇), 덩샤오핑(鄧小平) 등이 등장, 전(專)의 득세를 예고했다. 이에 대한 마오쩌둥(毛澤東)의 반격은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고 대약진의 극단적인 운동이 전개됐다.
76년 毛의 사망, 4인방 등 극좌 강경세력의 축출과 함께 개혁과 개방으로 상징되는 덩샤오핑 시대가 도래했다. 鄧 은 중국 사회의 모순을 '계급 투쟁'에서 '생산력의 저발전'으로 판단했다.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발전 목표를 1개 중심(경제 건설)과 2개 기본점(개혁, 개방)에 두었다.
1992년 중국 공산당 제14기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선포했다. 현재 중국 지도부는 2개 기본점의 경중(輕重)과 개혁·개방의 속도를 놓고 계파(보수·개혁) 사이의 갈등이 노정되고 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으로 이어진 중국의 1∼3세대 권력은 이제 제4세대로 옮겨가는 시점이다. 중국에서 공산당은 권력의 원천이자 영도의 핵심이다. 당·정·군 최고 지위를 모두 거머쥐고 있는 장쩌민 주석이 전퇴(全退)할지 반퇴(半退)할지에 따라 제4세대가 전면적으로 중국 역사에 등장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송대수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