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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교장 퇴임후 한국춤 가르치는 김종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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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교장 퇴임후 한국춤 가르치는 김종호씨

입력
2002.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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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1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1997년부터 전주 안골노인복지회관에서 6년째 한국 춤을 가르치는 김종호(金鍾浩·73)씨. 한국 전통 춤을 통해 자신의 퇴행성 척추염을 치유한 그는 "노인질환 예방에는 한국 전통 춤이 최고"라며 노인들에게 한국 전통 춤을 보급하는데 정열을 쏟고 있다.

1995년 2월 전북 무주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1년 간 봉직해 온 교육계를 떠났다. 퇴직 후 수지침, 발지압 등을 통해 노인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94년 말부터 발병한 퇴행성 척추염이 점점 악화되면서 나중에는 제대로 일어설 수 조차 없을 정도까지 진행됐다. 병원 입원생활을 하며 나는 실의에 빠진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노인들이 이가 없이도 김치를 씹어 먹는 것으로 보고 내 몸에 알맞은 운동을 하고 즐거운 마음을 갖고 산다면 이까짓 퇴행성 척추염쯤은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아내가 "우리 정서에 맞는 음악에 맞춰 춤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병으로 고통을 받던 나는 아내와 함께 전북도립 국악원에서 한국 고전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서는 나에게 개인교습까지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국악원에서 기본 춤과 학의 움직임을 본 뜬 한량무, 살풀이, 입춤 등을 배웠다. 거의 매일 국악원을 다니며 춤을 배우기 시작한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던가. 평소 잠자리에서 일어나려면 나선형으로 몸을 굴려야만 일어날 수 있는 나는 정상인처럼 벌떡 일어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중간 중간 힘들어서 춤 배우기를 쉬기라도 하면 몸 상태는 이상하게도 다시 나빠졌다. 밤늦게까지 열심히 춤을 배우는 것이, 나에게는 그 어떤 약보다 귀중한 치료제였던 것이다.

한국 전통 춤으로 병이 호전되자 나처럼 병으로 고통 받는 노인들을 위해 뭔가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한국 전통 춤을 통해 나처럼 고통 받는 또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면….

남에게 베푸는 삶,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은 늙어서 갑자기 품게 된 것은 아니다. 6·25 전쟁 때 이리농대(현재 전북농대)가 휴교했을 때 정훈사업 학년대장으로 야간에는 근로 보국대 청소년들과 함께 모내기, 마을 청소, 보리 베기 등의 봉사를 했던 경험도 있다. 또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봉사를 하는 것은 요통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못다한 효도를 대신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교편을 잡았을 때에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심정을 담은 노래인 '부모감온가'를 노트 표지에 붙이라고 학생에게 지시하고, 이를 붙이지 않은 학생은 채점조차하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1997년 4월 노인들에게 한국 전통 춤을 가르치기 위해 집 인근에 있는 안골노인복지회관을 찾아갔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춤 봉사를 하고 싶다는 제안에 복지회관 관장은 흔쾌히 동의하며 회관에서 무료로 노인들에게 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처음에는 역시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황갑주, 한기옥씨 등과 함께 50명의 노인들에게 한국 전통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춤을 배우지 못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는 일반 민속놀이 강좌를 열어 손뼉치기, 손가락 주무르기 등 건강에 도움이 되는 각종 동작을 가르쳤다. 또 태평가, 도라지, 아리랑, 노들강변 등의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가 개발한 '춤 체조'도 보급했다. 노화방지를 위한 운동을 춤으로 소화한 춤 체조는 노인회관 뿐만 아니라 중노송1동 동사무소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전북대한노인회지부 요청으로 도립 노인복지회관에서도 6개월 정도 전통 춤을 가르쳤지만 나이 탓으로 힘에 겨워 지금은 안골노인복지회관과 동사무소에서만 가르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4시간씩 춤을 가르친지 어느새 6년이 넘었다.

한 할머니 수강생이 "첫사랑의 애인을 기다리는 것보다 춤을 배우는 시간이 더 기다려 진다"고 말해 나를 감격시켰다. 남에게 봉사하는 삶이 너무나 좋아 항상 즐겁다. 인생이 이렇게 즐거운데 어떻게 늙겠는가? 봉사를 시작한 뒤 내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진 적이 없다. 춤을 가르치는 시간이면 나의 마음엔 평화와 기쁨이 가득하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두 아들이 있는 미국에 가서 쓸쓸히 여생을 보내고 있는 우리 교포 노인들에게도 민요와 한국 전통 춤을 가르치고 싶다. 그래서 요즘 고희를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1주일에 4시간 정도 영어를 수강하고 있으며, 집에 있을 때에는 회화 테이프와 EBS교육방송의 영어회화 시간도 빼놓지 않고 듣고, 배우고 있다. 또 안골노인복지회관에 있는 실버합창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나에게는 나이가 활동하는 데 절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정년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봉사야말로 나이를 잊을 수 있는 첩경임을 알려주고 싶다.

그런데 요즘 한가지 걱정이 늘었다. 평생동안 내 옆에서 동반자로서 도움을 주었던 아내가 병마로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빨리 건강을 회복해 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아내를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리는 일도 나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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