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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영웅들'/"대사건의 중심엔 누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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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영웅들'/"대사건의 중심엔 누가 있었나"

입력
2002.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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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 듀런트 지음ㆍ안인희 옮김 황금가지 발행ㆍ1만 5,000원

‘철학 이야기’로 잘 알려진 미국 철학자 윌 듀런트(1885~1981)의 미완성 유작(遺作)이다. 저자 사후 20년 뒤에 발견된 것으로, 명쾌하고 시적인 산문 속에 인류 문명의 명암과 그 극점을 조명하고 있다. 스스로를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 부르는 그는 인류사 전체를 조망하는 총 11권의 ‘문명의 이야기’를 50년에 걸쳐 썼다. 이 책은 ‘문명 이야기’를 축약한 것이다. 집필을 돕던 아내 아리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아내가 세상을 떠난 13일 후 듀런트도 사망하면서 23장을 목표로 했던 책은 21장 ‘셰익스피어와 베이컨’에서 중단됐다.

듀런트는 역사의 전환점을 이룬 사건들과 그것을 이끈 영웅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한다. 이 책의 한 가운데에는 역사를 “과거의 창조적 정신이 전통에 의해 살아서 작용하는 신의 도시”로 보는 듀런트의 시각이 놓여있다. 저자는 플라톤에서 베이컨에 이르는 숱한 영웅들이 씨줄과 날줄로 짠 천이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주목하는 시대는 영웅들이 대거 등장했던 그리스 로마 시대, 종교개혁의 시대,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 시대다. 그는 가족, 종교, 교육, 법 등 문명을 이루는 기본 축을 누가 이끌고 갔는가를 두고 역사의 상승과 하강을 판단한다.

그가 인류사의 영웅 가운데 가장 높이 꼽는 인물은 예수다. 예수는 ‘영적 의미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이다. 예수의 업적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덕성의 윤곽을 드러낸 데 있다. 이러한 예수의 혁명은 다양한 기독교 종파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파력을 지닌 사도 베드로와 바울에게로 이어졌다. 엄격한 신학과 도덕성을 인정받은 기독교는 제국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마침내는 ‘초강력 교황 국가’를 건설했다. 하지만 듀런트는 종교의 ‘무한한 자유’가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한 종교재판,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무차별로 학살한 십자군 원정으로 이어졌음도 빼놓지 않고 지적한다.

그 다음으로 제시된 가장 중요한 영웅의 상은 다빈치와 베이컨이다. 다빈치는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다. “실천보다는 착상이 많았고 가장 위대한 과학자나 엔지니어나 화가나 사상가는 아니었지만, 이 모든 것을 합친 사람이었다.” 새의 특성을 연구하며 비행을 시도하는 등 잘못된 생각들을 했을지라도 다빈치는 인류의 꿈을 밀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는 근대인으로는 베이컨을 영웅으로 꼽았다. “지식의 확장과 보급이라는 베이컨의 기획은 현대의 가장 심오한 드라마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재미는 박학과 혜안으로 내리는 통찰의 신선함에 있다. 듀런트는 ‘돈은 문명의 뿌리’라거나 ‘르네상스는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의 막간극’,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동물’ 등 재치있는 문장으로 역사의 공간을 종횡으로 누비고 있다. 하지만 엘리트주의적이고 서구중심적이며·남성중심적이라는 비판에서는 그리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여성으로 거론된 인물은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가 유일하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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