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우는 일은 쉽지 않은데 읽을 때마다 울먹이는 책이 두 권 있다. 하인리히 하러의 ‘흰거미’와 헤르만 불의 ‘8,000미터 위와 아래’가 그것이다. 산사나이들의 이야기지만 흔히 나도는 등반기나 모험담이 아니다.‘흰거미’는 1936년 유럽 알프스 3대 북벽에서 가장 무서운 아이거 초등(初登)을 노리던 클라이머들의 이야기고, ‘8,000미터 위와 아래’는 히말라야 자이언트 14봉의 하나인 낭가 파르밧 초등 때 일인데, 여기서 벌어지는 정경은 이른바 산사나이들의 공명 다툼이나 처절한 투혼 따위와 거리가 멀다.
표고 3,970미터의 눈과 얼음에 덮인 아이거 북벽에 붙은 독일ㆍ오스트리아 로프팀 4명 중 1명이 돌에 맞아 오르지 못하게 되자, 등반보다 그를 살리려고 팀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셋이 죽고 쿠르츠만이 로프에 매달렸다. 그때 구조대가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장면은 차마 따라갈 수가 없다. 이렇게 3일을 악전고투 하던 쿠르츠는 끝내 꽁꽁 얼어붙은 채 “이젠 끝이야”하고 중얼대며 고개를 떨구었다. 처절했던 싸움이 끝난 것이다.
또한 초등까지 23년 끄는 동안 두번에 걸쳐 25명의 인명을 앗아간 마의 산 낭가 파르밧을 1953년 고소 캠프에서 혼자 오른 오스트리아 산악인 헤르만 불. 그는 젊은 청년으로 떠났다가 이튿날 노인이 되어 내려왔다. 하산길에 스키슈톡을 짚고 선 채 밤을 지새는 천신만고 끝에 캠프로 돌아왔으나 대장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중간 캠프를 모두 철수했고, 불이 떠났던 마지막 캠프에는 친구가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이고 기록적인 초등에도 친구는 불에게 등정 소식을 묻지 않고 그가 살아 온 것이 기뻐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거의 쿠르츠의 비극과 낭가 파르밧의 불의 생환은, 죽음의 지대에서 일어난 극한 상황이라기보다 피와 정이 통하는 눈물겨운 인간 드라마로, 속세에 매몰되기 쉬운 나를 언제나 일깨운다.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장ㆍ 1977 한국에베레스트 원정대장>한국등산연구소장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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