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 2학년에 재학중인 K(20)군은 최근 성적표를 받고 부모님 볼 낯을 잃었다. 이번 학기에도 학점이 1.7을 못 넘어 3학기 연속 학사경고를 받았기 때문.이제 한번만 더 학사 경고를 받으면 서울대에서 영구 제명될 처지다. K군은 “거의 매주 있는 시험 때문에 일주일에 몇 차례씩 밤을 새우며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기초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2학년 전공을 따라가기가 불가능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고교에서는 전교 1~2등을 다투며 영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젠 제명될 처지에 몰린 K군은 마지막 대안으로 군 입대를 고려하고 있다.
■재학생의 9%가 학사경고
서울대생들의 기초학력 부실이 현실화해 상당수 학생들이 무더기 제명될 위기에 몰리고 있다.
22일 서울대에 따르면 올해 1학기 성적 사정결과, 681명이 학사경고를 받았고, 이중 6명(이공계 5명)이 학사경고를 4차례 받아 학사 제명됐다.
특히 3회 누적 경고를 받은 학생이 지난 학기 56명에서 133명으로 급증, 다음 학기 무더기 제명 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1회 이상 경고를 받은 학생도 2,001명으로 전체 재학생 2만2,851명의 8.7%에 이르고 있다.
1999년 부활한 학사경고조치는 한학기 성적 평점이 1.7(4.3만점)이하거나 세 과목 이상에서 F학점을 받는 학생에게 취해지며, 4차례 경고를 받으면 자동제적되고 재입학이 불가능하다. 제명자가 나온 것은 지난 학기 3명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공계가 더욱 심해
문제는 3회 누적경고자의 65%(86명)가 이공계생일 정도로 이공계생들의 기초학력 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데 있다.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의 김인태(20)군은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공학수학을 이해할 수가 없고, 그 다음 학기에는 회로이론 강좌를 듣기 힘들다”며 “기초가 제대로 안돼 계속해서 뒤 처지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세 차례 학사경고를 받은 화학과의 K(21)씨는 “고등학교 때 화학Ⅱ를 배우지 않아 1학년 때부터 일반화학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유기화학 기말시험에서는 도무지 문제 풀 엄두가 나지 않아 백지를 제출한 채 나왔다”며 허탈해했다.
그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소스(기출문제)를 구해 암기하는 것 밖에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대리시험까지 속출
수업을 따라가는데 역부족인데다 자칫하면 영구 제명될 위기에 몰리자 휴학이나 군입대는 물론 심지어 대리시험까지 속출하고 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의 강모(20)씨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휴학이나 군 입대로 일단 피하고 보는 경우가 많고 친구나 선배에게 시험을 대신 봐달라고 애걸복걸하는 학생도 종종 있다”며 “어떤 친구들은 아예 한 학기에 한 두 과목만 집중 수강해 학점을 높이려고 한다”고 전했다.
기초학력 부실에 따른 무더기 제명 위기는 이미 예고된 사태였다. 서울대가 이공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입학 초 자체 실시한 수학 시험에서 2001학년도에는 7.7%가 낙제됐고, 2002학년도에는 낙제자가 13.9%에 이르렀다.
서울대 계승혁(桂勝赫) 수리과학부 교수는 “신입생 수학시험에서 삼각함수의 미분조차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학생이 꽤 있었고, 평균값 정리를 제대로 기술한 학생은 30%에 불과했다”며 “쉬운 수능 등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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