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재보선 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신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분에 휩싸이더니, 신당은커녕 오히려 분당 위기로 치닫고 있다. 반 이회창 연대를 결성하기 위해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던 인사들이 ‘반 이회창 비 노무현’의 구호아래 민주당 일부 세력과 힘을 합쳐 신당을 추진하는 사태가 전개됨에 따라 민주당은 새로운 세력을 영입하기는커녕 당세 위축 및 분당을 자초하는 셈이 되지 않았나 싶다.정몽준 의원과 이한동 전 총리, 박근혜 한국미래연합대표, 이인제 민주당 전 고문 등의 신당추진세력에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힘이 보태질 경우, 제3의 신당은 민주당과 한나라당 양당 구도로 전개되던 대선가도에 커다란 변수로 등장할 조짐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은 신당 창당 주도 인물들의 면면이 그다지 참신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신당이 현 양당 구도가 증폭시키고 있는 지역주의를 완화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은 다소 위로가 된다.
3파전으로 전개될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면제 의혹 및 공적 자금 국정조사 등을 놓고 극한적인 대결구도로 치달을 것이고, 혼란한 정국의 와중에서 제3의 신당은 의당 어부지리를 노릴 법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환멸을 자아내는 정국에 등을 돌린 채 길거리 응원 대신 ‘집으로’ 향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3월 이 난(27일자 ‘국민경선 관전법’)을 통해 민주당이 순수한 민주적 명분(원칙)보다는 국민의 뒤떨어진 지지를 만회하여 재집권의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정치적 계산(실리)에 의해 국민경선제를 추진했겠지만, 그것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경우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반면 국민경선제가 실패할 경우,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선진적인 정치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도록 만들어버림으로써 안 하는 것만 못하게 됐다는 의미에서 일부 경선 불복세력은 물론 민주당 역시 한국 민주주의의 침체를 조장한 역사적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어지러운 정치판과 관련하여 해방직후 혼란스런 정국에서 단기적 권력에 연연치 않고 정치적 명분을 꿋꿋이 지킨 김구 선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남북협상이 실패한 후 김구 선생은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선언한 후 단정수립에 참여할 것을 거부한 바 있다. 분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기적인 실리에 집착했던 이승만은 권력은 거머쥐었지만 후일 민주주의보다 대권에 더 집착하여 장기집권과 독재정치를 획책하다가 역사적으로 실패한 정치인으로 남았다.
반면 김구 선생은 비운의 암살로 인해 구체적인 정치적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국민의 뇌리에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발견한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정치의 현 단계에서 대선은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가라는 단기적 결과보다는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에 전진이 있었는가라는 점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대선에서 최후의 승리자는 개별 정치인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민주적 게임의 규칙을 스스로 파기하고 국민경선의 결과를 거부하는 세력은 국민의 엄혹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에서 선수들의 훌륭한 기량 때문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열광적이고 질서정연한 길거리 응원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물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온 국민이 길거리 응원단 대신 경기장의 히딩크 감독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민주적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거나 비리의혹 등으로 정치적 자질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정치판에서 걸러내고 성실하고 민주적으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를 국가대표로 선발해야 할 것이다. 축구판에서는 외국 감독을 영입할 수 있지만 정치판에서는 외국 감독을 영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정인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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