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인천 해경 전용부두. 보트피플 21명의 입항을 기다리는 수많은 기자들로 인해 부두에는 가벼운 흥분감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들뜬 분위기는 이내 낭패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의례적인 사진촬영이 끝난 뒤 귀순자 일행 모두가 쫓기듯 관계기관이 마련한 버스편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훌쩍 지나친 이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소감이랄 것도 없는 감사인사 따위들 뿐이었다.오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해양경찰청의 공식 브리핑 자리에 다시 40~50명의 취재진이 몰렸으나 발표내용은 이미 구문(舊聞)이 돼버린 예인 상황 뿐이었다. "순종식씨의 둘째, 셋째 며느리는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 "기관장은 어떻게 합류했느냐” 쏟아지는 질문에 해경 관계자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할 수 없다” “국정원에서 조사 중이다”만 되풀이했다. 결국 “도대체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가 뭐냐”는 고성까지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지금껏 당국은 “조사가 끝나면 일괄 발표하겠다”는 입장만 거듭 밝히고 있을 뿐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한참 뒤에 ‘만들어진 작품’을 내놓던 1970, 80년대 이전을 방불케하는 모습이다.
5년전 바다를 통한 첫 가족탈북자였던 안선국·김원형씨 가족이 귀순했을 때는 도착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세한 탈북준비서부터 도착 상황이 모두 공개됐고 당국자들도 ‘쾌거’를 보충설명하는 데 열심이었다. 심지어 권위주의정권 시대인 1987년 2월 김만철씨 가족이 입국했을 때도 도착 즉시 모든 상황이 가감없이 공개됐었다.
당국의 이런 태도는 자칫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까하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들어 자주 그랬듯 지나친 조심은 자칫 북에 대한 저자세로 보여질 수도 있다. 부자연스러운 ‘보안’ 속에 벌써 탈북가족을 둘러싼 믿지못할 소문들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최기수 사회부 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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