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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자살로 발표한 허원근 일병 술취한 상관이 총기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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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자살로 발표한 허원근 일병 술취한 상관이 총기살해

입력
2002.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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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에서 대학생 출신 사병이 술에 취한 간부의 총에 맞아 숨졌으나 군 간부들이이를 자살로 조작한 사실이 18년 만에 드러났다.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ㆍ韓相範)는 20일 1984년 4월 강원 화천군육군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 중대본부에서 사망한 허원근(許元根ㆍ당시 22세ㆍ사진ㆍ부산수산대 휴학) 일병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하사관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 중대 간부 행패 부리다 총격

허씨의목숨을 앗아간 당시 술자리는 상식적으로 군에서 있을 수 없는 자리였다. 84년 4월2일 0시께 간부와 사병 10여명은 GOP(관측소) 근무지를 이탈해 중위로 진급한 간부의 축하파티를 열었다.

중대장 전령을 맡고 있던 허 일병은 이날 안주 준비를 담당했다.그러다 술자리에서 말다툼이 있었고 간부 중 한 명이 행정반으로 뛰쳐나와 행패를 부리던 중 중대장실 옆에 대기하고 있던 허 일병을 발견, 갑자기개머리판으로 때리고 M16소총을 빼 들어 발사했다.

총알은 허 일병의 오른쪽 가슴을 관통, 허 일병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목격자들은 의문사위에서“허씨가 끓인 라면이 맛이 없다”는 것이 간부가 총격을 가한 이유라고 진술했다.

▼ 자살 위장위해 시체에 총격 가해

허일병이 숨지자 중대 간부들은 대책을 논의한 끝에 사건을 은폐키로 하고 일단 연대와 대대에 사인을 자살로 보고했다. 이어 허 일병의 피가 흩뿌려져 있는 내무반을 물청소하고, 오전 10시께 허 일병의 시신을 본부에서 30㎙ 떨어진 폐유류고로 옮긴 뒤 다시 왼쪽 가슴과 머리에 한 발씩 총격을가했다.

의문사위는 이에 대해 “2발의 총성은 외부에서자살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제스처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대장은 이 시간에 예정에 없던순찰을 돌며 총성 2발을 자신이 직접 들었다고 진술했다. 위원회는 그러나 “중대장이 99년 사망해 현장 조작을 누가 지시했는지, 시신을 옮기고 총을 쏜 사람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고말했다.

▼ 군 당국 조사에서도 자살 결론

84년 헌병대 수사, 같은 해 육군 범죄수사단의 재조사 과정은 ‘자살’의거듭된 확인에 불과했다. 중대장만 현장관리 등을 이유로 전역조치 됐을 뿐, 실제 허 일병에게 총을 쏜 간부는 어떠한징계도 받지 않았다. 96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국방부에 전달한 재조사 권고안 또한 국방부에 의해 묵살됐다.

위원회는 “대대장 연대장 보고후, 군 내부의 어느 선까지 은폐에 가담했는지는 앞으로 조사할 사항이지만 사망현장에 피도 없을 정도로 엉성하게 조작된사건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군 조사권은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의문사위 관계자는 “군간부들의 사건은폐 개입은 어느정도 확인했지만 현장에 있었던 10여 명의 목격자 등 관련자들이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있어 보강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 허원근 일병 부친 "의문사특별법 개정에 도움 됐으면…"

“자살만 아니라고 해달라 했더니, ‘이래도 자살, 저래도 자살’이라는답변만 돌아왔습니다.”

20일 타살로 드러난 허원근씨의 아버지 허영춘(許永春ㆍ62ㆍ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문사 지회장)씨는 오랜 한을 애써 삭였다. 땅에 묻어버리면 혹시 마음에서도 묻혀질까 유골을 그대로 보관한 지 18년. 아들의 죽음은 차츰 다른억울함 죽음도 내 것으로 받아 들이게 했다.

1988년 유가협의 의문사 진상규명 135일 농성에 참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음 달 16일활동이 끝나는 의문사위의 활동연장과 권한강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그는 타살 발표에 대한 첫 소감도 “아들의죽음이 의문사 특별법 개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허씨는 얼마 전 위원회에서 알려준 ‘아들을죽인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죄를 물으려는 게아니다. 군 이라는 권력조직의 잘못이다. 군에 아들을 보낸 힘없는 서민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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