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해금강이 자연의 선물이라면 외도(外島)는 인간의 정성이다. 자연에 고이 순응하면서 오랜 시간 빚어낸 아름다운 유럽식 개인정원이다. 과거 연료가 없어 동백나무를 땔감으로 쓸 정도로 척박한 섬이었으나, 1969년 우연히 바다낚시를 하러 들렀던 이창호(68)씨가 이를 구입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탈바꿈했다. 이씨는 이곳에 30여년동안 1,000여종의 희귀식물을 심으며 가꾸어왔다.오전 7시 어슴프레 먹구름이 깔린 구조라항에서 외도로 가는 유람선이 떠난다. 배가 떠나자마자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곧 장대비로 변한다. 귀가 째져라 뱃고동소리를 흉내내는 선장의 넉살 속에 갖가지 전설이 깃든 해금강 바위들이 흘러간다.
촛대바위, 신부바위, 십자동굴… 듬직한 두 바위 사이에 움푹 틈이 팬 ‘십자동굴’은 운이 좋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비는 오지만 풍랑이 거세지 않아 손 뻗으면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기암괴석을 감상한다.
외도에 도착하기 전 ‘관람순서’ 에 대한 선장의 일장연설이 이어진다. 상륙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 전망대까지 올라가라고 권한다. 유람선 선장의 입담대로라면 외도 정문에서 전망대까지 “기운좋은 앞집 총각은 9분, 옆집 영이엄마는 15분, 쉬엄쉬엄 숨돌리고 가야 하는 뒷집 할머니는 28분” 정도가 걸린단다.
길 양쪽에 도열한 야자수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푸르름을 자랑한다. ‘유럽식’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비너스가든이다. 한풀 씻겨 한결 우아한 백색을 자랑하는 12개 다양한 비너스 석고상이 짙푸른 녹음과 고고하게 어우러진다.
빗발에 흰색 조각상은 우유빛으로, 훨씬 로맨틱한 자태를 뿜어낸다. 풀과 나무가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정원에 비해 전망대 주변은 왠지 허전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해금강의 비경은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과 탄성을 동시에 자아낸다. 역시 인간의 노고는 자연의 손길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관광객 중에는 연인들이 유독 많다. KBS ‘겨울연가’ 마지막 장면의 촬영지라는 타이틀이 젊은이들을 끌어들인 탓이다. 러브스토리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묻히고 싶어서인지 팻말이 붙은 곳에서는 어김없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
거닐다 보면 어느새 배가 떠날 시간. ‘천국의 계단’ 으로 내려간다. 잘 짜여진 편백나무가 빽빽한 방풍림을 이룬 곳이다. 소실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다. “비가 와서 고생은 했지만, 참 좋다, 그지?” “맑은 날 한번 더 오자.” 우산과 비옷 틈새로 연인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효과적인 외도 여행법
외도(055-681-8430, 서울사무소 02-2252-9400)에서 머물 수 있는 최대 시간은 1시간 30분. 이 시간동안 섬을 둘러본 후 다시 유람선을 타고 돌아가야 한다. 섬 내에 야외전망대 커피숍,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라운지 등이 있지만 느긋하게 머물 틈이 없다. 외도 관광객들의 최대 불만이기도 하다.
외도측에서는 “유람선 회사에서 운항횟수를 늘리기 위해 상륙시간을 얼마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유람선 회사에서는 “외도측에서 수용인원 때문에 시간을 제한한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 관광객으로는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서 이곳을 관람하려면 다른 어느 곳보다 ‘속도’와 ‘순서’가 중요하다. 아치모양의 정문에서 경사진 길을 올라가면 야자나무가 도열한 아열대식물원이 나온다. 그 옆에 50여종 선인장식물원이 있다.
이곳을 지나 화훼단지, 대죽로를 거쳐 해금강이 보이는 전망대를 오른다. 전망대에 휴게실과 스낵바 등이 있다. 시간이 충분할 경우 기마전,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를 주제로 한 전통놀이조각 작품들이나 외도의 전경과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제 2전망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의 계단으로 내려오며 남국의 희귀수목이 빼곡한 코커스가든을 구경하는 게 ‘속성’코스다.
외도 가는 길은 대전-진주간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한결 빨라졌다. 진주에서 사천 방면으로 14번 국도를 타고 고성, 통영을 거쳐 신 거제대교를 건너 거제도로 간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엔 대구에서 마산방면으로 가는 구마고속도로를 탄 후 서마산으로 진입, 통영 이정표를 따라 간다. 서울서 거제 장승포까지 하루 7회 고속버스가 다닌다. 서울 남부터미널 (02)521-8550.
외도는 청정자연보호구역인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에 있어 숙박시설이 없다. 섬 내에서도 음주ㆍ흡연을 할 수 없다. 통영의 충무마리나리조트 (055-646-7001), 거제의 옥포관광호텔(055-687-3761), 장승포비치호텔(055-682-5151) 등을 이용할 수 있고,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모텔이 여러 곳 있다.
거제도에서 외도로 가기 위해서는 장승포(055-681-6565), 와현(055-681-2211), 구조라(055-681-1188) 등 6개 지역에서 운항하는 유람선을 이용한다. 손님 수에 따라 하루 4~6편이 운항되며 외도까지의 소요 시간은 12~15분이다.요금은 어른 1만2,000원 어린이 6,000원
거제도=글·사진 양은경기자
■짧은 외도관광 아쉽다면…
짧은 외도관광이 아쉽다면 ‘거제자연예술랜드’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에서 조금이나마 그 갈증을 달랜다. 외도처럼 역시 한 사람의 정성으로 빚어낸 자연공원이다. 시조시인이자 수필가인 이승보씨가 30여년간 수집한 동ㆍ서양란과 수석, 분재, 야생화 등을 고향 거제로 옮겨와 만들었다.
갖가지 모양의 수석과 정원석을 볼 수 있다. 손가락이 미끄러질 듯, 잘생긴 몽돌로 만든 석탑이 인상적이다.
돌에 난을 붙여서 키운 석부작도 이곳의 자랑거리다. 해금강의 비경을 돌 하나에 응축해 놓은 듯 정교한 생김새의 ‘작품’이 늘어서 있다.
대나무발에 걸린 벽걸이용 석부작, 둥근 등모양으로 천장에 매달린 석부작 등 형태도 갖가지다. 신거제대교에서 사곡삼거리를 거쳐 거제읍을 지나 동부의 구천연담마을로 들어와야 한다. (055)633-0002
동부면 학동리의 학동 몽돌해수욕장도 빼놓을 수 없는 거제의 명물이다. 약 1㎞에 걸쳐 몽돌이 뒤덮고 있다. 맑은 바닷결에 ‘자라락 자라락’ 구르는 몽돌소리는 한국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 중 하나로 꼽힌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관광도로가 잘 다듬어져 있어, 해금강의 비경을 드라이브를 하며 한 눈에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조인 팔색조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노자산, 거제에서 가장 높은 최남단 가라산(585m)등도 돌아볼만한 거제의 명소. 우리여행사(02-733-0882)에서 외도 해금강, 몽돌해변과 자연예술랜드를 돌아보는 무박 2일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