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희 아버님은 회사원으로 정년 퇴직하신 지 3년째입니다. 한동안 집에만 계시다가 친구 분들과 어울리시면서 차츰 바깥 출입도 하시게 되셨습니다. 활기를 되찾으신 것 같아 식구들도 모두 안심했는데, 최근 친구 분들과 사업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적잖은 투자를 해야 한다며 부동산도 정리하겠다고 하십니다. 젊은 사람들도 사업에 실패하는 일이 많은데 처음부터 일을 크게 벌이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할 수도 없어 난처한 지경입니다. (서울 성산동에서 강씨)
A 직장 남성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을 때는 50대인데, 근래 우리사회는 그렇게 되는둥 마는둥 하다가 곧바로 은퇴바람을 맞으니 당자는 ‘거세’ 당했다는 느낌이지요.
수입이 없어 매사를 절약해야 하는데다 외출하시지 않고 꼬박 세 끼 식사를 다 하셨으니 처자식들에게 눈치가 보여 집에서마저 ‘거세’ 당했다는 심정이 들지요. 평생 회사 일밖에 모르시고, 성실 순진하시고 내성적이셨던 아버님이셨으니 고통과 고독이 보통 이상이셨을 것입니다.
노년기에는 돈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친구도, 건강도, 시간도, 취미생활도 살 수 있습니다. 뒤늦게 돈의 중요성을 실감할 때가 바로 초노기 입니다. 아버님은 친구들을 만나시고부터 당신이 의외로 남보다 돈이 더 있음을 깨닫게 되시고, 아울러 친구사회에서 부러움과 인정을 받게 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거세당한 심정에서 벗어나 남 앞에서 당당하게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붕 뜰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사기꾼입니다. 돈 아닌 명예나 직함이 필요한 퇴직자에게 사기꾼은 대개 가깝게 있습니다. 친구간에도 급해지면 우정이 날아갑니다. 성격상 아버님 같은 분은 투자를 더 많이 하고, 별로 책임 질 일을 하지 않고서도 피해는 제일 크게 입을 공산이 큽니다.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군요. 우선 아버님이 필요로 하시는 ‘인정과 존경’을 가족들부터 제공하십시오. 자주 모여 당신의 인생사를 들으시고, 자주 외식에 모시고 나가고, 가정을 이루고 지켜오신 것에 감사를 표하십시오.
감사는 반드시 ‘말’로, 뵐 때마다 큰 소리로 여러 번 해드리십시오. 눈, 귀가 어두워지고 감정이 무뎌지는 노년기에는 단순한 이심전심(以心傳心)은 통하지 않습니다. 묵은 취미를 격려하시고, 새 취미를 발견하도록 알선해 드리려는 노력을 보이십시오.
그런 연후에 슬그머니 사업투자를 걱정하는 말씀을 올리시지요. 가족의 존경을 확보하신 당신께서는 아마 경청하실 것입니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년기 창업자의 5%만이 성공한다고들 하지요.
/서울대 신경정신과 교수 dooyoung@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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