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식(70)씨 일가는 어떻게 북한의 해상 경계망을 뚫고 탈북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국내 거주 탈북자들은 북한의 해상감시체계가 1990년대 초반까지는 상당히 잘 갖춰져 있었으나 이후 극심한 식량난 등으로 허점이 노출되기 시작했다고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다.1987년 50톤급 소형함정으로 함남 청진항을 탈출한 김만철씨 등에 따르면 당시에는 민간인이 바다로 나가려면 출입증이 있어야했고, 가족단위의 승선은 엄격히 통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가 경제난으로 인한 이완된 사회 분위기를 타고 느슨해 졌다는 분석이다.
해상에서의 민간선박 역시 북한 해군의 철저한 감시를 받아왔다. 서해는 평남 남포의 서해함대사령부 예하 6개 전대에서 지역별로 나누어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순씨 가족이 출항한 평북 선천군은 인근 염주군 다사도에 12전대 기지가 있어 어느 곳보다 해상경계가 엄격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 해군은 심각한 유류난 등으로 필수전력만 운용 중이어서 경계망이 상당히 약해졌다는 게 군 당국의 예기다. 군 관계자는 “우리 해군함정의 레이더는 10마일 지점에서 20톤급의 목선을 관측할 수 있는데 반해 북한의 것은 훨씬 성능이 떨어진다”며 “더욱이 해군력이 집중된 서해5도에 비해 평북지역 해상은 감시망이 약해 탈출이 비교적 용이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물론 선장 순용범(46)씨의 철저한 준비가 탈북 성공의 핵심요소임은 말할 것도 없다. 순씨는 신의주에서 북한군의 감시망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간 적이 있을만큼 능숙하게 배를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해상경계체계에 정통한 순씨로서는 충분히 이를 피해 공해로 나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14 지도국
한편 순씨 일가가 타고 온 배가 소속된 114지도국은 우리 측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조직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여러정황으로 미뤄 북한 내각 수산성 산하에서 연안의 소형어선 활동을 지도감독하는 기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114지도국이 ‘탱크지도부’, 혹은 ‘포 지도부’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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