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1대와 12대 총장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국민의례와 찬송가로 시작된 이 행사에서 장상 전 총장은 6년간의 재임기간 이화여대가 크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 새 총장을 맞아 이화여대가 더욱 빛나는 발전을 이룩하기를 축원한다는, 매우 사려깊은 이임사를 감동적으로 낭독하여 아주 긴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신임 신인령 총장도 대학 운영에 대한 자신의 구상과 이화여대의 대 사회적 이미지가 청렴, 검소, 정직, 겸허, 실력, 원칙, 공의, 진보, 화합, 결속, 신뢰, 이타(利他) 등의 단어들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희망을 피력하기에 앞서 김활란 총장을 비롯한 모든 전임자들의 헌신적 노력과 업적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윤후정 이사장은 신임 총장이 극구 사양하는 것을 교수들이 간접투표를 통해 추대했다며 선임과정을 설명했고, 음악대학 합창단은 헨델의 대관식 찬미가 1번을 축가로 불렀으며 동창회장은 성경의 시편 1편을 봉독했다. 116년의 긴 역사에 이제 12번째 총장을 맞이한 이화여자대학교.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구석이 남아있다니! 교목실장의 축도로 이 아름다운 이취임식이 끝났을 때 마치 별천지에 들어 갔다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는 어떤 사람들은 이화여대의 바로 이런 면이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냐고 소리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매너리즘이라고 보이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이며 ‘이화 사람’도 아닌 내가 지금 어떤 특정한 대학이나 종교를 찬미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공적인 삶의 무대 곳곳에서 드러나는 풍경이 너무도 살벌하기 때문에 의례적이어야 할 대학총장 이취임식을 이례적으로 신선한 것으로 주목하는 것 뿐이다.
얼마나 많은 대학 총장들이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밀려났고 얼마나 많은 장관들은 자기가 해임되는지도 모르고 행사에 나갔다가 도중에 방송을 통해 해임사실을 통보받고 마치 큰 죄인이나 된 듯 황급하게 짐을 챙겨 사무실을 떠나는 비인격적인 취급을 감수해야 했는가.
지금 논란이 일고 있는 총리서리제도 문제에서 잘 나타나듯이 미리 예고되었던 개각에서 경질대상이 된 사람들도 신임자에게 떳떳하고 분명하게 업무를 인계해 주지 못하고 마치 뒷문으로 도망치는듯한 굴욕감을 느끼며 떠나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화여대가 총장의 이취임식을 아름답게 거행할 수 있었던 것은 퇴임 총장의 임기가 만료되기 훨씬 전에 후임 총장을 미리 선임해 두 사람이 모두 마음의 준비,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총장 임기가 비교적 길고 선출방식이 교수 사회를 심하게 분열시키고 당선자에게 불필요한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는 교수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라는 사실도 업무의 인수인계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정치의 세계는 물론 학문이나 교육의 세계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우리도 이제 인사청문회가 정례화되어 고위직 공직자들에 대한 사전 검증이 엄격해진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어려운 인준 과정을 통해 자격검증을 받은 사람들의 임기를 길게 보장하여 실제로 큰 일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고, 떠날 때에는 의례적으로 훈장을 수여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적을 기리며 환송하는 분위기 속에서 ‘준비된’ 후임자와 이취임식을 갖도록 공직사회의 관행을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야만적 관행을 끝내지 않으면 진정 능력이 있어 국가에 기여할 사람들은 오히려 공직을 기피하고, 일자리를 ‘먹을 자리’로 보는 사람들만이 공직을 탐하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이화여대는 이번에 아깝게도 최초의 여성총리를 배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지나간 공은 공대로 기리며 일시적인 실수나 실패보다는 앞으로의 역할에 대한 기대 속에 더 큰 격려를 보냄으로써 인재를 아끼고 활용하는데 이전투구의 악의가 풍기는 남성 중심의 정치풍토 속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전범을 제시하는 데는 성공한 듯 하다. 한국의, 아니 세계의 대표적인 여성교육기관으로서 이화여대의 발전을 기원한다.
이인호 국제교류재단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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