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10여일간 지겹도록 뿌려대던 장대비가 비로소 멎으면서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마을은 온통 황토빛이었다.채 빠져나가지 못한 누런 물 속에 마을 논밭 대부분은 여전히 잠겨 있고, 여기저기 물위로 고개를 내민 가옥들의 방과 마당에는 진흙과 오물들이 잔뜩 쌓이고 엉겨붙었다.
대피소에서 쓰던 침구와 간단한 식기류 따위를 싸 안고 마치 전쟁난민처럼 남부여대해 돌아온 주민들은 눈 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열흘 만에야 집에 돌아온 한림2구 김상신(金相信ㆍ78)씨는 물에 젖고 부서져 폐허가 된 집 안뜰에 서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 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한동안 넋을 놓고 있던 김씨 가족 5명은 불어터진 가재도구와 옷가지 등만 대충 들어내고는 “몸을 누일 공간이 없다”며 다시 임시거처로 발길을 돌렸다.
옆 마을인 한림1구 강원중(姜元中ㆍ71)씨는 정강이까지 차오른 물길을 걸어와 집안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쓸 수 있는 물건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한참 만에야 정신을 수습한 강씨는 “더럽고 냄새나는 옷이라도 갈아 입어야겠다”며 근 군부대에서 설치한 임시세탁소로 젖은 옷가지 몇벌을 챙겨들고 갔다.
또다른 주민 한말연(62·여)씨도 “밤중에 갑자기 물이 덮쳐드는 바람에 간신히 몸만 빠져 나왔었다”면서 “오늘 와보니 TV, 냉장고, 세탁기 등 모든 가전도구가 다 쓰레기가 돼 버렸다”고 울먹였다.
이날까지 한림면 일대는 침수된 23개 마을 930가구(2,370명) 가운데 222가구만이 겨우 모습을 드러낸 상태.
그나마 이들 가옥도 부분적으로만 물이 빠진 상태여서 아직 본격적인 복구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도움의 손길들로 인해 주민들은 적으나마 시름을 덜었다.
한림면사무소 앞 임시 ‘선착장’에서는 119구조대와 해군 UDT대원들이 스티로폼과 널빤지를 밧줄로 묶은 간이 뗏목까지 만들어 생필품을 실어날랐고 ‘선착장’옆 도로에서는 가전·가구업체와 가스공사 등에서 나온 직원들이 물에서 건져낸 물건들을 말리고 닦아냈다.
마을 밖으로는 시시각각 트럭들이 도착해 구호물품들을 내려 놓았으며, 한켠에서는 비상 급수관 설치작업과 전기복구 공사가 이뤄졌다.
김해시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한림면 화포천 주변 19개 배수장중 가동이 가능한 9곳을 모두 가동하고 장방리 등에 200여대의 양수기를 총동원해 물을 빼내고 있으나 완전 배수에는 앞으로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급한 문제는 각종 질병. 접촉성 피부염에다 감기, 유행성 결막염 등이 번지고 노인성 관절염 환자도 속출해 하루 130여명이 한림면 임시보건소를 찾고 있다.
이곳 공중보건의 문상원(文相源ㆍ26)씨는 “주민 대부분이 오염된 물에 장기간 노출된 데다 노인들의 피로가 쌓이면서 환자 발생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물이 빠진 뒤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인성 전염병이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동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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