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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그들에게 우리는 전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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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그들에게 우리는 전시품이었다

입력
200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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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막 태동하고 있던 근대 인류학은 제국주의의 이론적 배경으로 작용하는 과오를 범한다. 당시의 서구 인류학은 인종주의의 편견에 사로잡혀 비서구를 야만으로 몰아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제국주의에 도덕성과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서구에서 ‘과학의 이름으로’ 이뤄진 이 같은 행위들은 비서구 세계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모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심지어 살아있는 에스키모들이 인종표본처럼 다뤄지고 나중에는 이들의 시신이 실험실의 동물처럼 해부되어 꼬리표가 붙은 채 박물관에 보관되는 엽기적인 일도 벌어졌다.

켄 하퍼의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은 19세기 후반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을 배경으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서구 과학의 거만함과 문명의 몰이해로 빚어진 에스키모 소년 미닉의 비극적 삶을 추적한다.

100여년 전 그린란드에 살고 있던 미닉과 그의 아버지 키수크 등 에스키모 6명은 1896년 8월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의 손에 이끌려 뉴욕에 도착한다. 햇살이 비치는 땅, 따뜻하고 멋진 집, 총과 칼, 풍부한 양식 등 피어리가 약속했던 뉴욕에서의 삶은 꿈에 불과했다.

애초 약속과 달리 피어리는 에스키모를 연구하고 싶어했던 미국자연사박물관 연구원의 부탁으로 미닉 일행을 낯선 뉴욕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뉴욕에 도착한 뒤 수많은 군중들에 휩싸여 ‘동물’ 취급을 당하다 자연사박물관의 지하실에 수용된 에스키모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2년여만에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그 사이 에스키모 한 명이 그린란드로 돌아갔고, 고아가 된 미닉만이 뉴욕에 남게 된다.

서구 과학자의 오만함과 무자비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미닉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 키수크의 가짜 장례식을 치르고 시신은 빼돌려 살과 뼈를 발라낸 채 박물관에 전시한다. 그들에게 에스키모들은 인류학적이고 민족학적인 연구의 흥미로운 대상일 뿐이었다.

박물관 관리인에게 입양돼 비교적 뉴욕 생활에 잘 적응하던 미닉은 뒤늦게 이런 비밀을 깨닫게 되고 뉴욕 생활과 미국의 이중성에 환멸을 느낀다.

정당한 매장을 위해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받겠다는 요구가 박물관에 의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닉은 북극으로 떠나는 귀향선을 탄다. 하지만 에스키모 말을 잊은 채 13년간 뉴욕 사람으로 지냈던 미닉은 ‘자기 세계에서 강제로 떠나고 다른 세계에서는 완전히 환영받지 못하는’슬픈 운명이었다.

두 세계의 틈새에 끼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미닉은 1918년 피츠버그의 벌목촌에서 결국 폐렴으로 죽고 만다.

캐나다 태생 백인으로 에스키모 여인과 결혼한 저자는 1975년 장모로부터 미닉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전해 들었다. 그는 8년 동안 덴마크 왕립도서관, 미국 국립기록보존소, 자연사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관련 자료를 모아 ‘뉴욕 에스키모’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해냈다.

100년 동안 자연사박물관이 은폐해왔던 반인류적인 범죄행위를 폭로한 이 책은 1986년 출간되자마자 사회적인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 ‘원주민 집단이 요구하면 박물관은 유골을 반환해야 한다’는 법이 의회를 통과했고 ‘뉴욕 에스키모’들의 유골이 93년 마침내 그린란드로 옮겨지게 됐다는 뒷이야기도 재미있다.

저자는 에스키모 사이에 전설로 내려오고 있던 미닉 이야기를 치밀하게 부활시켜 문명과 과학이 제국주의 아래에서 세계 각지의 토착 문화를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가 의지와 도전의 역사로 알려져 왔던 북극 탐험사를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특히 책에는 세계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에스키모들을 뉴욕에서 전시하고 입장료를 챙기는가 하면 북극의 운석, 모피, 해마, 일각고래 등을 팔아 넘겨 이익을 남긴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또 피어리에게 살아 있는 에스키모를 박물관에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바로 미국 인류학의 창시자 프란츠 보아스였다는 사실, 피어리의 후원자로 정복지 북극에서 얻은 이익을 함께 나눈 사람이 자연사박물관의 설립자이자 YMCA의 회장이었던 모리스 제섭이었다는 사실도 폭로된다.

원제는 ‘Give Me My Father's Body’.

켄 하퍼 지음ㆍ박종인 옮김

청어람미디어 발행ㆍ1만2,000원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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