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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원죄의 씨앗 '오만'의 끝은 어디…네델란드 작가 멀리쉬 '천국의 발견' 번역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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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원죄의 씨앗 '오만'의 끝은 어디…네델란드 작가 멀리쉬 '천국의 발견' 번역출간

입력
200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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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는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의 고국으로 더 친숙해졌다. 네덜란드 작가들의 작품은 우리에게 지금껏 낯설었지만 하리 멀리쉬(75ㆍ사진)의 장편 ‘천국의 발견’(전2권ㆍ작가정신 발행)의 출간으로 현대 네덜란드 문학의 흐름도 감지할 수 있게 됐다.멀리쉬는 세스 노테붐과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거론돼온 대표적인 네덜란드 작가다.

작가의 아버지는 유대인 아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군부에 협력했으며, 전후 4년 간 독일에 부역한 죄명으로 투옥됐다. 어두운 개인사로 그늘진 그는 “나 자신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1992년작 ‘천국의 발견’은 멀리쉬가 천착해온 주제가 통합된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인간은 악마와 계약을 맺고 과학 기술을 무한히 발전시킴으로써 천국의 발견을 목전에 두게 됐다.

소설은 인간의 도전에 위기감을 느낀 신이 인간과의 인연을 단절시키려는 목적으로 지상에서 사자(使者)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좇은 것이다. 지상의 세 인물 막스와 오노, 아다의 만남을 통해 사자를 태어나게 하려는 천국의 작업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아픈 상처와 겹쳐진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대인 어머니와 독일에 협력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평생 외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막스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막스가 자신의 뿌리를 찾으러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간 사이 막스의 옛 연인 아다는 막스의 친구 오노의 여자가 된다.

여행 중 막스와 우연히 만난 뒤 그의 아이를 갖게 된 아다는 오노와 결혼한다. 아다가 낳은 아이가 천상의 임무를 담당하게 되는 크빈턴이다. 사자는 결국 인간이 지은 죄악의 씨다. 상징적이다.

크빈턴이 신과 인간과의 계약서인 십계명 석판을 찾기 위해 교양과 지식을 쌓는 과정은 그대로 유럽의 역사다. 문화와 예술, 정치와 종교를 아우른 20세기 유럽의 정신 지도가 화려하게 그려진다.

인간의 오만에 대한 작가의 불신은 작품 곳곳에서 매섭게 드러난다.

“루시페르(악마)는 인간들이 자신의 자동차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온 천하의 파멸을 선호하리라는 걸 파악하고 있지.” “그는 알고 있어, 물질 앞에선 자신의 다리라도 절단할 용의가 있는 인간들의 약점을.” 현학적이고 단도직입적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빈틈없으면서도 거침없이 펼치는 주장은 멀리쉬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힘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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